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오후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서유럽이 이끄는 나토에 가입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러시아가 전쟁까지 거론하며 전운(戰雲)이 감도는 가운데 중국이 러시아 편을 확실히 든 것이다. 러시아도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며 미·중이 갈등하고 있는 대만 문제에서 중국을 지지했다. 중·러 정상이 반미(反美)를 고리로 의기투합하는 양상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회담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나토를 겨냥해 “일부 국가가 군사, 정치적 동맹으로 다른 나라의 안보를 해치려 한다”며 “냉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해 미국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협력체)를 결성하고 호주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비판했다. 중·러는 또 핵무기 경쟁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탄도미사일 요격 프로그램의 확대를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가 핵심 이익을 지키는 데 있어 서로 지원할 것”이라며 “전략적 조율도 심화하자”고 했다.
중국은 이날 러시아로부터 연간 천연가스 100억㎥를 장기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은 2014년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연간 380억㎥씩 30년간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번 추가 계약을 통해 연간 수입량이 480억㎥로 늘어난다고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가스프롬 수출량(1851억㎥)의 26%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날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시 주석은 2년 가까이 중단했던 대면 정상외교를 재개했다. 러시아 대통령궁은 애초 “두 사람이 오찬을 겸한 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푸틴 대통령은 오후 3시(현지 시각)가 지나서야 댜오위타이에 도착했다. 지난달 25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났을 때 마스크를 쓰고 기념 촬영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는 마스크를 벗은 채 가까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중국 환구시보 영문판은 “두 정상은 2013년 이후 30여 차례 만났다”며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보드카와 캐비아, 러시아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서로 생일을 축하하는 등 친밀한 시간을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후 곧바로 러시아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에서 군사적 충돌이 임박하자 서둘러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8시 국가체육장을 찾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선포했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개막식장 주변은 일반인 접근이 금지됐다. 오후 4시부터 기다린 각국 대표단과 외교관, 일부 선발된 시민들이 관중석을 채웠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이날 1면에 베이징 동계올림픽 유치 결정부터 준비까지 시진핑 주석 1인의 업적을 강조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참석부터 이후 8년간 동계 스포츠 확대 등을 위한 시 주석의 노력을 열거했다. 그가 올림픽 현장 실사(實査)를 5차례 했고, 지난달 시찰 때는 구역별 쓰레기 처리까지 세세히 살폈다는 것이다. 인민일보는 “반드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중국 인민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고, 부강·개방·희망에 찬 국가의 이미지를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를 이유로 선수단과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시 주석 앞으로 축전을 보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국제 체육 운동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아로새기며 약동하는 중화의 기상과 국력을 힘 있게 과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북·중 관계에 대해서는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불패의 전략적 관계로 다져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