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장 근처에 위치한 지하철 올림픽공원(奧林匹克公園)역. 이 역의 영문 표기는 ‘Olympic Green’에서 지난해 ‘Aolinpike Gongyuan’으로 바뀌었다. 영어 대신 올림픽공원을 중국어로 읽을 때 나는 소리인 병음(拼音·알파벳을 이용한 중국어 발음 표기)을 쓴 것이다. 외국인을 위해 괄호 안에 ‘Olympic Park’라고 적어놨지만, 소책자나 휴대전화 화면으로는 분간이 쉽지 않다. 인근의 올림픽중심(奧体中心)역도 영문 표기가 ‘Olympic Sports Center’에서 ‘Aoti Zhongxin(Olympic Sports Center)’으로 바뀌었다.
베이징⋅톈진 등 중국 도시의 공공장소 영어 표기가 최근 중국어 병음으로 바뀌면서 외국인들이 불편을 토로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 보도했다. SCMP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서 개방성이 줄어들고 국제화에서 멀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톈진 빈하이 국제공항(濱海國際機場)의 영문 표기는 ‘Binhai International Airport’ 대신 중국어 병음인 ‘Binhai GuoJiJiChang’을 쓰고 있다. 베이징처럼 별도로 영어 해석 없이 병음만 쓴 표지판도 있어 중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뜻을 알기 어렵다.
이런 변화는 중국 각 도시가 중국어 병음을 우선 쓰는 공공 지명 표기 지침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SCMP에 따르면 베이징의 경우 2017년 공공 구역에 대한 영문 표기 지침을 발표했다. 베이징 지하철은 2020년 12월 중국어 병음 중심의 역명을 적용한 새 지하철 노선도를 발표하고, 지난해 지하철 역사와 객차 안 표기를 차례로 교체했다. 베이징 기차역(北京站)은 ‘Beijing Railway Station’에서 ‘Beijing Zhan’(Zhan은 역의 중국어 발음)으로 표시하고, 괄호에 ‘Beijing Railway Station’을 쓰고 있다.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제2터미널(二號航站樓)도 ‘2 Hao Hangzhanlou(Terminal 2)’로 표시하고 있다.
이런 명칭 변경은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지명에 쓰이는 쉬운 한자의 경우 대다수 중국인이 읽을 수 있어 병음이 필요 없고, 외국인들의 경우 지명이 로마자로 돼 있지만,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동계올림픽이라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교체가 이뤄진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화에 주력하면서 택시 운전사들에게 영어 교육을 했다. 영어가 통하는, 세계화된 중국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택시 운전사 왕하오씨는 SCMP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회사에서 손님에게 영어로 이야기하며 환대를 표하라고 했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이 많이 달라졌고, 나는 외국인 승객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많은 서방 국가가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영어 교육을 장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고위층 자녀 상당수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최근 중국 정부는 청소년에 대한 영어 교육이 과도한 사교육을 부추긴다며 영어 교육을 억제하고 있다. 중국 교육 당국은 초·중·고교에서 영어로 된 외국 교과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상하이 등에서는 지난해 초등학생에 대해 영어 시험을 금지했다. 중국 교육계 인사들에 따르면 중국 대학 강의에서 쓰이는 예문도 영어 등 외국어로 된 글은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고 시진핑 주석의 연설 등 중국 당국의 입장을 담은 예문을 쓰도록 장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