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 다음날인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두 곳의 친(親)러 반군 장악 지역을 ‘국가’로 승인하고,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했다. 푸틴은 올림픽 개막 전인 지난 4일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추가 확장을 반대하며, 나토가 이념적 냉전시대 접근을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나라는 모두 미국 주도의 전후(戰後) 국제질서가 쇠퇴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세력권’이 인정받는 새판 짜기를 함께 추구한다. 공동성명은 “양국 간 우정(friendship)에는 제한이 없고, 협력엔 어떠한 ‘금지된’ 영역도 없다”고 했다. 양국 간 군사협력도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인도양, 동해, 동중국해 등지에서 두 나라는 해군‧공군 연습을 함께 한다.
그러나 5364 단어로 된 이 영어 번역본 공동성명에 ‘우크라이나’라는 말은 전혀 없었다. 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서는 협력체제를 구축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하는 중국의 어색한 입장을 드러냈다.
◇일대일로 공들인 벨라루스‧카자흐스탄에 이어, 우크라이나마저…
중국은 그동안 계속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사태를 피하려고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과의 무역 규모가 연간 150억 달러인 우크라이나는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GRI) 사업의 주요 유럽 관문(關門)이다. 시진핑은 지난 1월 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지난 30년간의 양국 관계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역사상 국가인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또 2010년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시진핑이 상호 방문한 이래, 정상 회담을 거듭하며 벨라루스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공을 들였었다. 그러나 2020년 8월의 대선(大選) 부정과 이에 따른 시위를 가라앉힌 것은 러시아였다. 이전까지 러시아와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모색했던 루카셴코는 이후 완전히 푸틴의 품에 안겼다.
러시아는 지난 1월에도 특수부대를 투입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대규모 시위를 진압해 친(親)러 정권을 지켜냈다. GRI를 통해 카자흐스탄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던 중국의 영향력은 이후 감소했다. 중국으로선 우크라이나가 이들 국가처럼 ‘러시아 뒷마당’이란 것을 인정해도, 무작정 러시아 편을 들 수 없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모두 중국 GRI의 주요 파트너 국가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주드 블랜쳇은 21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웹사이트 기고에서 “중국 전문가들도 사적으로는 러시아를 화나지 않게 하면서, GRI의 주요 파트너인 우크라이나를 돕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고 밝혔다.
◇중,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도 아직 인정 못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한 나라’로 보듯이, 중국도 타이완과 남중국해, 인도, 부탄 등지에서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다. 두 나라는 국경선을 다시 긋고 싶어 한다. 또 지난 4일의 양국 정상 공동성명은 유럽에서의 나토 확장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동일시하며 지역에 주는 “부정적 영향”을 비판했다. 각자의 세력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무력 갈등은 미국과 서방의 관심이 아시아‧태평양이 아닌, 온통 유럽으로 쏠리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이런 공통점에도, 중국은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엔 ‘속사정’이 있다. 러시아의 영토 침략을 인정했다가, 중국이 “정당하다”고 우기는 영토 야욕까지 국제사회에서 같은 취급을 당하기 싫은 것이다. 중국은,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경선 재(再)설정’엔 반대한다.
◇러시아 공개 지지는 가뜩이나 악화된 미‧EU 관계에 부담
미국뿐 아니라, 이미 유럽 국가들의 대중(對中) 경계 수위도 매우 높다. 어차피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경제‧금융 제재에 놓이게 되면, 러시아가 원유‧가스를 팔기 위해 기댈 곳은 중국뿐이다. 중국은 지금도 미국이 주도하는 이란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산(産)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인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NATO)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두 독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함께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공개 지지하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미국과 EU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영국 글래스고대 마신 카츠마르스키 교수와 킹스칼리지런던의 나타샤 커트 교수는 “러시아와 중국의 점증하는 ‘우정’이라는 것은 새로운 국제질서라기보다는 홍보 행사”라고까지 평가절하했다. 싱가포르국립대의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인 알프레드 우는 CNN 방송에 “중국은 러시아를 겨냥한 경제 제재의 2차 대상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아, 러시아를 공개 지지한다는 인상을 피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지난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모든 관계 당사자가 대화와 논의로 종합적인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에 그쳤다.
중국은 미국‧EU‧중국‧러시아를 국제 질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로 인식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면, 국제 질서는 미국‧EU 대(對) 중국‧러시아라는 과거 양극(兩極)체제로 돌아가고, 중국은 가장 약한 러시아가 ‘한 패’가 된다.
◇미 대사 “양다리 걸치기‧방관하지 말라”에, 중 대사는 “모든 관련국 자제를”
21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駐)유엔 미국 대사는 “지금은 집단행동을 취할 때”라며 “누구든 양다리 걸치기를 하기엔 너무 위험이 크다. 방관하지 말라”며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장쥔 중국 대사는 “현 우크라이나 상황은 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라며 “모든 나라는 평화적 수단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