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미국·유럽연합(EU)과 러시아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지만 중국은 “각 국가의 자제와 협상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강조하고 있다. 어느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이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EU와의 경제 관계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중국에 딜레마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부 국가가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했는데 중국도 그렇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제재는 근본적으로 효과가 있는 수단이 아니며 중국은 불법적인 일방 제재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며 제재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각 측이 대화와 협상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화 대변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와 대(對)러시아 관계에서 중국과 다른 국가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국은 미국과 경쟁이 심해지는 과정에서 러시아와 군사·에너지·우주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해왔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3년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38번 만날 정도로 정상 간 관계도 가깝다. “러시아와 협력하지 못한 분야가 없다”고 강조해 온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반대한다”며 러시아와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9일 뮌헨 안보회의 화상 연설에서 “각국의 주권과 독립, 영토 완전성은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이기 때문에 응당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 우크라이나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적 모호성’은 미국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을 더 키워서는 곤란하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안보 우려를 가진 EU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상황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으로의 수출이 막힐 경우 경제적 피해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명보는 23일 중국이 서방의 외교적 역량이 러시아에 집중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하는 외교적 카드로 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