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 전체가 베이징 다싱(大興)구 공원에서 열린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했다. 시 주석은 직접 삽으로 흙을 나르고 소나무에 물을 줬다. 행사에 참석한 초등학생들에게는 “노동 의식과 환경보호 의식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초등학생 수십 명은 행사장을 떠나는 시 주석을 향해 “시 할아버지, 시 할아버지”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이날 시 주석 등 모든 참석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같은 날 중국 인터넷에선 상하이 시민 선루이건(沈瑞根·77)씨 사망 사건이 화제가 됐다. 당뇨병과 신장병을 앓고 있어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지만 상하이가 지난달 28일 오전 5시부터 도시 봉쇄에 나서면서 투석을 받지 못했다. 코로나에 걸린 그는 가족 동행이 허락되지 않아 혼자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집을 나선 지 55시간 만인 지난달 28일 밤 10시 푸둥병원의 집중치료실(ICU)에서 홀로 숨졌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12시간 후 병원에서 연락받은 아들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부친이 겪은 일을 시간대별로 적으며 “가련한 우리 아버지가 며칠간 겪은 진상(眞相)”이라고 했다. 중국 네티즌은 “제로 코로나라는 소동이 누군가의 희생을 가져왔다”고 했다.
중국 금융 수도 상하이가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5일까지 8일간 봉쇄 조치 시행에 들어갔다. 비즈니스맨과 관광객으로 붐볐던 거리는 인적이 끊겼고 “셀러리 한 단 구하기가 에르메스 가방 사는 것만큼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민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중국판 제로 코로나 정책인 ‘동태적 칭링(清零)’ 정책에 대한 경제·사회적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유입 경로를 확인하기 힘든 상황에서 언제까지 도시 봉쇄를 반복할 것이냐는 것이다. 올가을 20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100년을 이끌 지도자’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시 주석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시 주석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미국 등 서방과 달리 강력한 방역으로 코로나 확산을 막고 경제를 조기 회복시킨 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강조했다. 관영 CCTV방송은 미국의 코로나 확산 소식을 연일 전했다. 중국 공산당은 방역 정책을 언급할 때마다 “시 주석이 직접 지시,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거대 IT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며 사교육 기업의 영리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등의 초강력 시장 통제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클라이맥스는 작년 11월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통과된 ‘당(黨)의 100년 분투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역사 결의)는 전체 분량의 55%를 시진핑 시대에 할애하고 1981년 역사 결의에 있었던 ‘개인 숭배 금지’ ‘종신 집권 폐지’ 등을 삭제했다. 정치와 경제 모든 분야에서 서방과는 다른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그 주인공은 시 주석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가 중국에 상륙하면서 꺾였다. 산시성 시안, 광둥성 선전, 지린성 창춘 등 대도시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도시가 봉쇄됐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봤다. 지금까지 100명 가까운 지방 관리가 방역 실패를 이유로 문책받았지만 산발적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은 것도 예상보다 심각한 경제 상황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놀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시 주석은 일부 정책에선 속도 조절에 나섰다. 그는 작년 하반기 업무 시작 일성으로 분배에 중심을 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강조했지만 최근에는 “케이크부터 크게 만들자”고 말하고 있다. 도시의 높은 집값을 잡으려 부동산 대출을 조이고, 부동산세 시범 도입 확대 계획 등도 밝혔지만 최근에는 일부 도시를 중심으로 정책을 완화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 기업 규제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올해 업무 보고에서 “예측 가능한 규제”를 강조했다. 베이징의 기업 관계자는 “안정적인 경제 운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책을 되돌린 측면도 있지만 경제 분야에서 시 주석의 업적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식 코로나 방역의 경제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 2년간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오미크론이 확산하면서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강력한 코로나 통제로 공장을 조기 가동해 미국과 유럽에 수출을 늘리던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 정점이 지난 미국·유럽·아시아 국가들이 거의 정상 수준으로 공장을 돌리는 데다 여행업 등 중국 내 서비스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이 엄격한 방역을 고수한다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6%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는 5.5% 내외다. 지난 1991년 이후 3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번 상하이 코로나 사태는 차기 지도부 인선에 대한 시 주석의 구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리창(李强·62) 상하이 당서기는 시 주석의 최측근으로 올가을 당대회에서 최고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했지만 상하이에서 코로나가 확산하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시 주석은 지난 2020년 초 후베이성에서 코로나 환자가 5만명(누적 기준)을 넘어서자 그 책임을 물어 후베이성 당서기를 교체했다. 상하이에선 현재까지 무증상 감염자를 비롯해 3만명이 코로나에 감염됐다. 마춘레이 상하이시 비서장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전염성이 극도로 강한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방역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이 동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난 2018년 헌법 개정으로 주석 임기 제한을 철폐했고 후임자가 없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오는 2027년 3월까지 국가주석직을 유지하는 것은 무난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주룽지 전 총리가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비판하는 등 시 주석의 권력에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연간 100억㎥ 러시아산 천연가스 추가 도입에 합의하는 등 러시아와 ‘한 팀’으로 보이는 대외 정책을 편 데 대해서도 당내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만이 누적될 경우, “이미 덩샤오핑을 넘어섰고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시 주석도 4연임 이상 장기 집권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中, 코로나 봉쇄 정책 내년 3월 이후 완화 예정]
한중 항공편은 週당 12편 불과
“중국 정부가 코로나 방역 언제쯤 완화할까요?”
1년 넘게 베이징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봄부터는 중국 정부가 방역을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오미크론이 시안, 선전, 창춘에 이어 상하이까지 퍼지면서 이제는 시진핑 3기 지도부가 업무를 시작하는 내년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이후에야 방역 수위가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중국 정부의 이런 입장은 국제선 항공편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은 주당 12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7편만 한국에서 승객을 태우고 5편은 중국에서 한국으로만 운행된다. 작년 하반기 한중 항공편이 주당 34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 된 셈이다.
중국국제항공은 최근 발표한 올 10월 29일까지 운항 계획에서 외국 도시에서 베이징에 직접 도착하는 노선을 모두 취소했다. 대신 목적지를 톈진, 정저우, 시안 등 다른 도시로 바꿔 해당 지역에서 3주 이상의 격리를 하도록 한다. 베이징의 방역 부담을 분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서울·베이징 노선 역시 도착지가 랴오닝성 다롄으로 변경됐고, 운행도 주 1회에서 월 1회로 축소됐다. 기업인들은 한국을 오가는 비행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중국 내에서도 현실적으로 제로 코로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달 30일 ‘동태적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고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2억6700만명, 청소년 인구는 2억5000만명으로 인구 중 노인과 청소년 비율이 높다”며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코로나를 제때 엄밀히 통제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