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차기 행정장관(행정수반)에 출마한 리자차오(李家超·64) 전 홍콩 정무사장(政務司長·총리 격)이 선거위원회 위원 과반의 지지를 얻어 당선이 확실시된다. 리 전 사장은 홍콩 미니헌법이라고 불리는 홍콩기본법에 보안법 조항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 “최우선 고려 사항 중 하나”라고 말했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리 전 사장은 13일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면서 선거위원회 위원 786명의 동의 내역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1454명의 선거위원회 위원들의 간접선거로 치러진다. 투표는 5월 8일 무기명으로 실시되지만 리 전 사장이 입후보 단계에서부터 투표권자의 과반 이상(54%)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변이 없는 경우 차기 행정장관에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위원회는 중국 중앙 기구의 홍콩 대표·홍콩 의회·금융·산업·농어민 등 각계가 선출한 대표로 구성된다. 리 전 사장은 앞서 자신을 지지한 선거위원회 위원 명단을 4월말 공개하겠다고 밝혔었다. 16일 후보 등록이 끝나는 가운데 현재까지 행정장관에 입후보한 사람은 리 전 사장뿐이다.
리 전 사장은 12일 중국기업협회 소속 선거위원들과 면담을 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기본법 23조 입법을 우선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행정장관에) 당선된다면 현 정부 업무의 계획을 이어받아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기본법 23조에는 반역, 분리독립, 국가전복 등에 대해 최장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이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게 돼 있다.
홍콩 정부는 2002년 법률 제정을 시도했지만 야당과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입법에 실패했다. 중국은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벌어지자 홍콩 자치 보장 약속을 깼다는 미국과 영국 등의 비판에도 2020년 6월 직접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 시행했다. 다만 중국이 만든 홍콩 국가보안법의 경우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외국과 결탁한 안보 위협 등 4대 범죄만 담고 있기 때문에 홍콩 정부는 이와 별도로 자체 입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통상 친중(親中) 진영의 지지를 받는 보수주의 후보와 야권인 민주 진영과 일부 홍콩 재계의 지원을 받는 자유주의 성향의 후보가 경선을 벌였었다. 2017년 선거에도 중국 당국의 지지를 받는 캐리 람 당시 정무사장과 재계 지원을 받은 존 창 재정사장(財政司長)이 2파전을 벌였다. 홍콩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는 존 창이 50% 이상을 얻어 그 절반에 불과한 캐리 람을 압도했지만 선거위원회 투표 결과 캐리 람이 2배가량의 표를 얻어 행정장관에 당선됐다.
2019년 말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반중 성향의 야권이 압승하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야당 정치인들을 대거 체포하는 한편 2021년 3월 홍콩 선거법을 개정해 홍콩 정부, 의회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했다.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위원회 정원은 1200명에서 1500명으로 늘어났고, 이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와 인민정치협상회의(자문기구) 홍콩 대표 몫은 87명에서 190명으로 확대됐다. 이번 선거는 선거법 개정 후 처음 치러지는 행정장관 선거다.
리자차오 전 정무사장 독무대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 대해 케니스 찬 홍콩침례대 정치국제관계학과 부교수는 “둥젠화(董建華·1997~2005년 홍콩 행정장관) 시대의 1인 선거 시대로 돌아갔다”고 “(투표권자인) 선거위원회 위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충성을 표시하면서 5월 8일 본 투표는 이미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새 홍콩 행정장관 유력 리자차오는 누구…경찰 출신, 홍콩보안법 집행 진두 지휘
차기 홍콩행정 장관이 유력한 리자차오 전 정무사장은 1977년 홍콩 경찰이 된 후 경무처 부처장, 보안사장 등 경찰·안보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반중 시위가 극에 달했던 2019년 보안사장으로 반중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홍콩보안법 집행을 진두지휘했다. 그 공로로 작년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사장에 임명됐다. 경찰, 안보 업무 출신이 정무사장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리 전 사장은 지난 9일 행정장관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과 홍콩에 대한 애정에서 출마하게됐다” “충성스럽고 책임지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충성’을 강조했다. 선거 구호는 “홍콩 새 장(chapter)을 함께 열겠다”다.
중국이 홍콩 수반으로 리 전 사장을 낙점한 것은 중국이 홍콩 정책에서 경제보다 사회 치안을 강조하겠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에 망명한 홍콩 민주인사들이 그의 출마에 대해 “홍콩인의 악몽”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홍콩에 대해 ‘전면적 통치권’을 천명한 상황에서 누가 행정장관이 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