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초기 중국의 대응을 극찬해 친중(親中)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중국 매체들은 중국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그의 말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중국의 방역 정책을 왜곡하거나 회의하고 부정하는 일체의 언행에 대해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러스의 양상을 고려할 때 그것(중국의 제로 코로나)이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 전문가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그러한 접근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며 “(정책) 전환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보건장관과 외교장관을 역임한 그는 지난 2017년 세계보건총회(WHA)에서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영국 후보를 누르고 WHO 수장에 선출됐다. 당시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 등과 함께 그를 지원했다. 지난 2020년 1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자 그는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고, 3월에는 “시 주석의 탁월한 지도력 아래 중국이 믿기지 않는 노력을 쏟았고 중국 정부의 단호한 결심과 중국인들의 근면한 봉사 덕분에 중국이 코로나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했다. WHO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태도는 작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발생한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를 놓고 중국 협조를 압박했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코로나 기원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작년 7월 회원국을 상대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코로나 기원 조사에 중국 실험실에 대한 감사(audit)를 포함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중국은 러시아 등 47국과 함께 “코로나 문제를 정치화하지 마라”는 서한을 WHO에 보내기도 했다.

그가 중국의 방역 정책을 공개 비판한 것은 현재 유행 중인 오미크론 변이는 추적, 봉쇄가 어렵다는 WHO 전문가들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하이 봉쇄가 장기화되고 베이징, 허난 등 각지에서 코로나가 퍼지면서 국제사회에서는 강력한 방역으로 인한 경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경선을 치렀던 첫 임기 때와 달리 지난해 9월 단일 후보로 추천돼 오는 2027년까지 WHO 사무총장 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라는 점도 중국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WHO 권고에도 중국은 최소 올 연말까지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이 방역 조치를 풀 경우 중국에서만 1억1200만명이 코로나에 감염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산 백신의 부실한 효과, 중증 병상 부족 등을 감안할 때 150만명이 사망하고 사망자의 75% 정도는 백신을 안 맞은 60대 이상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중국 정부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로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층 인구와 의료시설 부족을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