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A사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지사를 대표처 형태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경제 보복’으로 고전했지만 한·중 관계가 풀릴 기미를 보이자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업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통제가 장기화되면서 지방 출장은 고사하고 사무실 출근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되자 임차료, 직원 월급 등 고정비용이라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3월 상하이를 시작으로 베이징이 강력한 코로나 방역 조치를 실시하면서 한국 기업 등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중국 내 투자를 줄이거나 철수까지 고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이 내년까지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 유럽 기업을 대표하는 주중유럽상공회의소가 이달 초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370개 유럽 기업 중 78%가 “중국의 엄격한 방역 정책이 중국에 대한 투자의 매력을 떨어뜨린다”고 답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를 다른 국가로 돌릴 예정이거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23%로 최근 10년간 가장 높았다. 코로나 팬데믹 후인 2020년과 2021년 같은 설문에 11%와 9%만 “그렇다”고 답했던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자체보다 3월 말 상하이 봉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도 1919년 주중미국상공회의소가 설립된 이래 전례 없는 위기라고 호소했다. 주중미국상공회의소가 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121개 미국 기업 가운데 52%가 “코로나로 인해 중국 투자를 연기하거나 규모를 줄였다”고 답했다. 콤 레퍼티 주중미국상공회의소장은 “현재 코로나 관련 방역 규제가 계속되는 한 기업들은 (중국 이외의) 다른 선택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공회의소장을 지낸 한 미국 기업인은 미국에서 상하이로 입국 후 43일간의 격리와 봉쇄를 거쳤지만 베이징행이 어려워 결국 미국으로 돌아갔다”며 “기업들은 이 터널의 끝이 어딘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일할 인재 확보도 비상이다. 입국 후 최소 21일간의 격리, 잦은 봉쇄와 이동 통제 등 강력한 방역 정책 때문에 중국에 오겠다는 직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하이 봉쇄 도중 숨진 채 발견된 한국 주재원, 중국 입국 후 코로나 판정을 받아 호텔, 병원에서 2달 가까이 지내다 격리가 풀리자마자 회사에 사정해 첫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간 주재원 사례가 회자된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중국에 파견 나온 직원들의 사기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인 직원 B씨는 “원래 중국에 파견 나오면 3~4년씩 근무하는 것이 원칙인데, 코로나 통제가 워낙 심하다 보니 2년만 근무하고 귀국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C기업 베이징 지사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생활이 고달플 뿐만 아니라 성과를 내서 승진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해 중국을 기피하는 풍조가 한국에 퍼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