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장관이 26일부터 6월 4일까지 10일간 남태평양을 방문한다.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등 남태평양 7국과 인근 태평양 국가인 동티모르를 찾는다. 중국이 지난해 출범시킨 ‘중국·태평양 도서국가 외교장관’ 회의도 주재한다.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이 순방 기간 미크로네시아연방, 쿡제도, 니우에 측과 화상 회담한다고 밝혔다. 한차례 순방을 통해 중국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남태평양 10국과 모두 접촉하는 셈이다. 왕 부장은 기후변화 대응, 경제 협력을 강조하고 호주에 원자력 잠수함을 제공하기로 한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동맹)를 비판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어업권 확보 등의 목적으로 남태평양 국가와 관계 강화를 모색하고 경제 협의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태평양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본격 시동을 건 것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부터다. 시 주석은 2014년 피지, 2018년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했다. 중국은 2019년 대만 수교국이었던 솔로몬제도, 키리바시와 전격 수교했고, 올해는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하며 전략적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익명의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왕이 부장의 이번 순방 기간 중국이 키리바시 등과 안보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남태평양은 2차 대전 이후 전통적으로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영향권에 있었다. 1954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남태평양에 대해 “미국의 호수(lake)”라고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일부 국가의 정치 혼란으로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가 주도해온 태평양도서포럼(PIF·18국)은 지난해 의장 선임 문제를 놓고 키리바시 등 5국이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분열 위기에 놓였다. 미국은 괌 남쪽에 있는 3국(팔라우, 미크로네시아연방, 마셜제도)과 자유연합협정(COFA)을 체결해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이 협정이 2023~2024년 만료돼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뉴칼레도니아, 폴리네시아 등 남태평양에 자치령을 가진 프랑스는 미국·호주와 협력 전선에서 멀어진 상황이다. 미국에서 원자력 잠수함 기술을 제공받기로 한 호주가 프랑스제 디젤 잠수함 도입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외교 공세에 남태평양국가들은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적극 타진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은 남태평양 수교 10국과 모두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중국 랴오청대 태평양도서연구센터 위레이(於鐳) 수석연구원은 25일 환구시보 인터뷰에서 “중국은 남태평양 국가들이 식민지 정치 경제 패러다임에서 진정으로 벗어나 진정한 독립을 지원한다”며 “남태평양 비핵화, 기후변화, 서방 식민 지배 배상 요구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또 “서방 국가들이 제공할 수 없는 경제 건설을 돕는다”고 했다. 남중국해는 중국이 대만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서도 중요한 지역이다. 대만의 14개 수교국 가운데 4국(팔라우, 나우루, 마샬제도, 투발루)이 남중국해에 있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자 관련국들은 비상에 걸렸다. 호주는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하자 앞마당에 중국 군사기지가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남태평양 지역에서 영향을 확대하며 호주에서 일본으로 들여오는 철광석 수입로가 영향 받을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월 미 국무장관으로는 36년만에 피지를 방문해 14국과 화상회의를 했고, 백악관은 3월 조셉 윤 전 대북특별대표를 태평양 도서 특사로 임명했다. 지난달에는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을 중국과 안보협정을 체결한 솔로몬제도에 파견해 중국 군사 기지가 건설될 경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미국은 지난해 일본, 호주와 함께 미크로네시아연방, 키리바시, 나우루에 인터넷·통신 해저 케이블 건설을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