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도서국 순방의 일환으로 피지를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30일(현지시간) 수도 수바에서 열린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중국이 30일(현지시각) 열린 남태평양 외교장관 회의에서 통과시키려던 경제·안보 협력 제안이 일부 국가의 반대로 불발됐다. 하지만 중국은 회의 후 24개 항목의 구체적인 협력 제안을 공개하며 구애를 이어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회의 축사에서 “중국·태평양 도서(島嶼) 국가 운명 공동체를 건설하자”고 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피지에서 남태평양 수교 10국과 중국·태평양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했다. 중국이 지난해 만든 회의체로 이번이 2회째다. 피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 외교장관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중국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남태평양국가들과 안보와 경제 협력 방향 등을 담은 포괄적 협력 문서를 채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경제·안보 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미크로네시아연방 등이 이에 우려를 표시하며 문서 채택에 실패했다.

외신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날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우리의 제안을 별도로 공개할 예정”이라며 “합의를 만들기 위한 더 깊은 논의와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첸보(錢波) 피지 주재 중국대사는 왕 부장의 기자회견 후 취재진들과 만나 “특정 사안과 관련한 일부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국이 애초 보낸 제안 문서에서는 경제, 문화 협력과 함께 남태평양 국가의 경찰을 훈련시키고 전통·비전통적 안보 문제에서 법 집행 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연방 대통령은 최근 다른 도서 국가 정상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중국과의 협정에 대해 “우리 생애 중 태평양에서 게임의 판도를 가장 크게 바꾸는 단 하나의 합의”라며 “잘하면 신냉전시대, 최악의 경우 세계 대전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다만 중국이 이날 밤 공개한 ‘태평양 도서 국가와 상호 존중, 공동 발전에 관한 중국의 입장 문건’에는 “사이버 범죄를 포함한 비전통 안보에 공동 대응한다”는 표현이 들어갔지만 경찰 훈련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건에는 “태평양 도서국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고히 지키고,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이해하는 것을 칭찬한다” “핵확산금지조약을 근간으로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수호한다”는 등의 표현이 담겼다. 미국이 호주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는 상황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24개 항목의 협력 사업도 제안했다. 여기에는 남태평양 국가들에 긴급 물자 비축 센터, 기후 변화 대응 협력 센터, 빈곤 퇴치 발전 협력 센터, 농업 협력 시범 센터, 방재(防災) 협력 센터, 버섯·식물 협력 시범 센터 신설과 함께 중국·태평양 및 남태평양 국제무역디지털 박람회 개최 등이 담겼다. 2025년까지 2500명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3000명의 직업 교육을 지원하며 향후 5년간 200명의 의료진을 남태평양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태평양 도서국 사무를 전담하는 정부 특사를 임명할 계획이다.

왕 부장은 같은 날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와 회동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1992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과 (남태평양) 수교국과의 교역액은 연평균 13%씩 성장해 30년간 30배가 됐고, 중국 기업이 맡은 개발 프로젝트 총액이 200억달러가 넘는다”고 했다. 또 “중국이 (남태평양) 도서국에서 500개 가까운 기술 원조, 물자 원조, 차관 등 사업을 실시해 도로, 건설, 부두, 병원, 학교, 체육 시설을 건설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