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주홍콩 미국영사관 건물의 창문에 촛불이 켜져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이 6·4 천안문 사태 33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일부 홍콩 주재 외국 공관에 천안문 사태와 관련한 의견 표명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고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미국 등이 이에 따르지 않자 중국 당국은 “30여 년 전 정치 사건을 이용한 이데올로기적 침투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며 ““정치 공작을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홍콩 경찰이 매년 기념식이 열리던 빅토리아 파크 일대를 완전히 봉쇄하면서 올해도 홍콩에서 천안문 관련 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중국 천안문 사태 33주년을 맞이한 지난 4일, 홍콩의 한 거리에서 백지(白紙)를 들고 있는 여성이 현지 경찰관들에게 가로막혀 수색당하고 있다. 홍콩에선 2020년 7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반(反)정부 성격을 띠는 구호 사용이 금지되면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를 드는 것이 새로운 시위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홍콩에서 열려왔던 천안문 관련 추모 행사들도 국가보안법 시행을 계기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로이터 연합뉴스

명보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의 홍콩 사무소인 주(駐)홍콩특파원공서(公署)는 4일 천안문 사태 기념일을 앞두고 일부 서방 국가 총영사관에 “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입장 표명을 자제하지 않을 경우 양국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통보했다. 홍콩 시민단체가 주도했던 천안문 사태 기념행사에 대해선 “적의(敵意)를 가진 극소수 반중, 반정부 인사들이 주최한 불법 행사”로 규정했다. 천웨이신 홍콩중문대 사회과학원 강사는 “6·4 사건과 관련, 중국은 홍콩에 대한 전면적 통치권을 내세운 후 더 강한 어조로 서방에 중국의 입장을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압박에도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은 4일 공관 건물의 유리창마다 천안문 사태 33주년을 추모하는 촛불들을 켜놓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게시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3일(현지 시각) 발표한 성명에서 “천안문 광장 대학살의 피해자를 추모하려는 연례 촛불집회가 그날의 기억을 억압하려고 시도하는 중국과 홍콩 당국에 의해 금지됐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홍콩, 신장, 티베트를 포함한 중국의 잔혹 행위와 인권침해를 밝히고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총영사관도 “EU는 언제나 평화롭게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이들과 연대한다”는 EU 대변인의 천안문 사태 논평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일대에서 정치 자유 확대, 부패 척결을 요구하던 시위대를 중국군이 총과 탱크로 무력 진압한 사건이다. 최소 수백명의 시위대가 숨졌다. 피해자 가족, 홍콩 시민단체, 서방국가들은 중국 당국의 반인권적 탄압을 비판한 반면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반당(反黨)·반혁명 동란(動亂)”으로 규정해왔다. 홍콩 당국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천안문 기념행사를 허용해왔지만 2020년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후로는 집회가 불허됐다.

홍콩 경찰은 “불법 활동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4일 빅토리아 파크 일대를 봉쇄했다. 일부 홍콩 시민은 4일 손가락 절반 길이의 작은 촛불 모형을 들고 거리로 나오기도 했지만 경찰은 장난감 탱크, 장미, 전단을 들고 있다는 이유로 전직 정치인, 시민들을 검문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홍콩에서조차 6·4에 대한 집단 기억이 조직적으로 지워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