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대만해협이 다시 요동치고 있습니다. 중국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에 맞춰 대만해협과 서태평양에서 랴오닝호 항모전단 전투기 출력 훈련을 하자, 대만은 항모 전단을 겨냥한 미사일 실탄 사격 훈련으로 대응했죠.
태미 덕워스 미국 상원의원이 대만을 방문한 5월30일에는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30대의 중국 군용기가 출격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다시 불붙는 분위기에요.
◇대만 통일 속내는 TSMC 확보
이런 와중에 중국 내 싱크탱크 회의에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관변 싱크탱크인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천원링(陳文玲)이 “반드시 대만을 수복해서 본래 중국 기업인 TSMC를 우리 손안에 넣어야 한다”고 한 겁니다.
중국은 대만 침공의 명분으로 조국 통일을 내세워 왔죠. 우리가 남북통일을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를 해결해 조국을 완전히 통일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임무”라고 얘기해 왔어요. 그런데 ‘역사적 임무’라는 이 명분 뒤에서 숨은 중국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버린 겁니다.
이 회의는 5월30일 중국 인민대학 충양(重陽)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렸는데, 주제는 ‘대포위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의 대중정책 진전에 대한 평가와 중국의 대응’입니다. 10여명의 중국 학자들이 미국의 포위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놓고 발표와 토론을 했어요.
발표에 나선 천원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중국에 대해 치명적인 제재에 나설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 자체적인 산업 사슬, 공급망을 탄탄히 다져야 한다”면서 “특히 산업 사슬과 공급망 재구축 차원에서 대만을 수복해 TSMC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TSMC가 미국 이전을 서두르고 미국에 6개 공장을 짓는다는데, 이런 목표가 실현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도 했어요.
◇해외 보도 나오자 원문 삭제
중국 입장에서 대만 통일은 정치적 모험입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공산당 정권이 붕괴할 수도 있겠죠. 그런 대가를 치르고도 대만을 손에 넣으려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만 기술 기업 확보입니다.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죠.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제재에 부딪혀 답보 상태에 있는 반도체 등 주요 분야의 기술을 확보해 일거에 강대국으로 도약한다는 계산을 하는 겁니다.
천원링은 국무원(정부) 연구실 종합국장 출신으로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경제 관련 연설 원고,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 작성 등을 10년간 맡은 관변 경제학자예요. 2010년 은퇴해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학술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속내를 잘 아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천원링의 발언은 애초 중국 국내 매체에도 보도됐는데, 해외 언론이 이 발언을 부각해 보도하자 보도 기사와 발언 원문을 곧바로 삭제해 버렸습니다. 속내를 들킨 게 부담스러웠던 거죠.
◇“TSMC 자동 파괴 시스템 구축 필요”
사실 중국의 이런 노림수에 대한 얘기는 미국 쪽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국방전략 전문가인 재러드 맥키니 미주리대 교수와 피터 해리스 콜로라도대 교수는 작년 11월 미국육군참모대학 계간지에 기고한 ‘둥지 파괴: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Broken Nest: Deterring China fr en Nest: Deterring China from Invading T ading Taiwan)’라는 글에서 중국이 무력 침공을 시도하면 대만 내 TSMC 생산시설을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초토화 전략을 쓰자고 했습니다. 중국이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대만을 무력 점령할 소지를 아예 없애버리라는 거죠.
또 중국 정책결정권자들이 설마하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미국과 대만 당국이 협의해 침공 개시와 동시에 자동으로 생산시설을 파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대만 내 반도체 기술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죠.
천원링의 발언은 이런 미국 전략가들의 제안에 초조해진 중국 당국의 내심을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