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둔 17일 홍콩 해변에 한 커플이 앉아 있다./EPA 연합뉴스

홍콩이 1일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5주년을 맞았다. 중국이 지난 1997년 홍콩 반환 때 약속했던 ‘50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기간의 절반을 지난 셈이다. 홍콩 시내 곳곳에는 중국 국기와 홍콩특별행정구역기가 내걸렸고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바우히니아(자형화·홍콩의 상징 꽃)는 찬란히 필 것”이라며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홍콩의 발전을 찬양했다. 하지만 홍콩인들은 “25년 전 반환 때만큼이나 홍콩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했다.

19세기 외진 어촌에서 영국 식민지 거점항을 거쳐 국제 금융·무역 도시로 변신했던 홍콩의 경제는 지난 25년간 2배로 성장했다. ‘아시아의 진주’이자 중국을 오가는 관문으로 외국인 직접 투자(FDI) 세계 3위, 수출 세계 6위, 증시 규모 세계 7위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2019년 대규모 반중(反中) 시위를 계기로 중국이 홍콩에 대한 ‘전면적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은 지난 2020년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계기로 홍콩에 대한 각종 무역 혜택을 취소했다. 홍콩 국제공항은 싱가포르 등에 비해 지나치게 강력한 코로나 방역 정책 때문에 아시아 항공 허브 지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26일 한 남성이 홍콩반환 25주년을 축하하는 포스터앞을 지나가고 있다./EPA 연합뉴스

지난 1997년 이후 100만명 이상이 중국 본토에서 영구 이주했지만 홍콩 인구는 지난 2019년 말 752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1년 6개월 만에 12만6000명 감소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0월부터 2021년 9월 사이 홍콩 초중고생 81만명 가운데 3만명이 자퇴했다. 헥시트(HKexit·탈홍콩)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홍콩 반환 2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오후 4시 15분 시진핑 중국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전용 고속열차 편으로 홍콩 웨스트카우룽(西九龍)역에 도착했다. 시 주석이 중국 본토를 떠난 것은 지난 2020년 1월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홍콩 방문 역시 지난 2017년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 이후 5년 만이다. 당시 비행기로 홍콩을 찾았던 시 주석은 이번엔 고속철을 이용했다. 홍콩이 중국에 통합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개통된 홍콩 고속철은 홍콩과 중국 50여 개 도시를 연결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전용 고속 열차 편으로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 도착해 환영을 받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된 후 사실상 통합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는 강력한 생명력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중국 본토를 벗어난 것은 2020년 1월 코로나 사태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EPA 연합뉴스

시 주석은 도착 연설에서 “홍콩은 엄중한 시련을 겪었고 위험과 도전에서 승리했다”고 했다. 또 “홍콩은 불 속에서 다시 부활(浴火重生)했다”며 “이는 일국양제가 강력한 생명력을 가졌고 홍콩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 홍콩 동포의 복지를 보장하는 좋은 제도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1일 열리는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과 홍콩 특구 정부 출범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시 주석은 취임 후 홍콩 통합에 공을 들여왔다. 홍콩을 중국 광둥성·마카오와 연결하는 웨강아오 대만구(粤港澳 大灣區) 개발 계획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8년 중국 주하이와 홍콩을 잇는 주강아오 대교의 개통으로 주하이에서 홍콩국제공항까지 차량 이동 시간이 4시간에서 45분으로 단축됐다.

하지만 홍콩은 지난 2019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됐다. 시 주석은 홍콩에서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가 대규모 반중 시위로 번지자 직접 개입했다. 지난 2020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를 통해 반중 인물을 감시,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이후 200명 가까이가 보안법으로 체포됐다.

보안법 시행에 따라 공공·학교 도서관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도서가 퇴출되고, 1989년 중국 천안문 광장 학살을 추모하는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홍콩 최대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주요 인사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며 입법원 의원(국회의원)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처지가 됐다. 90명으로 구성된 홍콩 입법원에서 친중파가 아닌 인물은 사회단체 진영에서 뽑힌 1명 뿐이다. 익명을 요청한 홍콩 학자는 ”반환 후 50년간 홍콩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덩샤오핑의 약속이 파기됐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25일 홍콩의 한 아파트에 홍콩반환 25주년을 축하하기위해 수많은 중국 오성홍기와 홍콩기가 걸려있다./AP 연합뉴스

인재 유출, 경제난, 국제 도시로서 위상 약화 등 3중 도전도 심각하다. 영국이 홍콩인에 대한 이민 조건을 완화하자 작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영국으로 가기 위해 비자를 받은 홍콩인은 12만명이 넘었다. 지난 3월 홍콩총상회(상공회의소)가 68개 회원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8%는 “직원들이 이민을 떠나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민을 택하는 이유(복수 응답)는 자녀 진로(57%), 정치적 원인(45%), 더 나은 생활 환경(27%) 순이었다.

경제 동력을 찾는 것도 난제다. 지난 1분기 홍콩 경제 성장률은 전년 대비 -4%를 기록했다. 홍콩 정부는 금융 산업 이외에 중국 광둥성과 연계해 IT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홍콩 증시에서 중국 기업 비율은 78%(주가 총액 기준)로 국제 도시보다는 중국 도시 중 하나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IT 기업 임원으로 선전, 홍콩 등에서 일해 본 로날드 슬라덱씨는 “홍콩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포용성이 큰 매력이었다”면서 “하지만 이제 누가 사업을 어디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선전으로 가라고 조언할 것 같다”고 했다.

홍콩이 입국자 격리 등 코로나 방역 정책을 유지하면서 아시아의 교통 허브 지위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 5월 싱가포르 국제공항 이용객은 2400만명에 달했지만 홍콩 국제공항은 1만7000명에 그쳤다. 홍콩 미국상공회의소 조셉 아르마스는 AP통신에 “글로벌 커넥터(connector·연결자)로서의 홍콩의 장점은 크게 줄었다”며 “기업인들이 이동이 편리한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도심 뒷골목에서 복싱을 하며 놀고 있는 어린이들./로이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