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응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힌 중국군이 4일 정오(현지 시각) 대만 주변 동서남북 해역에 탄도미사일과 다연장 로켓을 발사했다. 일부 미사일은 수도 타이베이 상공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젠(J)-20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해 100대가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중국군 전투기, 폭격기가 대만 주변 상공을 뒤덮었다. 대만 주요 항구, 군사기지 앞은 물론 유사시 미군 항모 전단이 진입할 길목을 사실상 봉쇄하는 이번 훈련에 대해 “중국의 대만 통일 작전 예행연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대규모로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대만 정부는 “비이성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했다.
대만 국방부는 이날 발표에서 “중국군이 오후 1시 56분부터 4시까지 대만 북부, 남부, 동부 주변 해역에 둥펑(DF) 계열 탄도미사일을 총 11발 발사했다”며 “발사 즉시 상황을 파악해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고 밝혔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중국 저장, 푸젠성 등 최소 3곳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350~700㎞ 비행했으며 일부는 수도 타이베이 위를 통과했다. 중국 탄도미사일이 대만 상공을 통과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군 미사일 5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며 중국에 항의했다.
중국군 동부전구는 이보다 먼저 발표한 성명에서 “동부전구 로켓 부대가 대만 동부의 해역 여러 곳에 미사일 여러 종류를 발사했고, 모든 미사일이 목표물에 명중했다”며 “정밀 타격 능력을 점검했다”고 했다. 뒤이어 중국 관영 CCTV방송이 사거리 700㎞인 DF-15B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중국군은 이날 탄도미사일 외에도 사거리 500㎞인 PCL-191 다연장 로켓을 대만 서부 대만해협을 향해 발사했다. 대만과 120㎞ 떨어진 푸젠성 핑탄섬 등에서는 시민들이 로켓이 날아오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앞서 3일 오후 9시와 10시 중국 본토에서 3㎞ 떨어진 대만 진먼섬에 중국군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가 두 차례 진입해 대만군이 신호탄을 발사해 경고했다고 대만 언론들이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대만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해군 함정 10척과 군용기가 이날 오전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쪽 해역에 머물렀다고 보도했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중국과 대만의 실질적인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간선 무력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은 4일 정오부터 7일 정오까지 대만 주변 해역 6곳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예고하고 이 지역에 대한 선박과 항공기 통행을 금지했다. 중국이 설정한 군사훈련 구역 6곳 가운데 3곳은 대만 영해(해안선에서 약 22㎞)가 포함됐고, 가장 가까운 곳은 대만 육지에서 10㎞가 채 되지 않는다. 대만해협 쪽 군사훈련 구역은 중국과 대만의 실질적 해상 경계선인 대만해협 중간선 동쪽의 대만 구역도 포함돼 있다.
멍샹칭 중국 인민해방군 국방대학 교수(소장)는 중국 CCTV방송에 출연해 이번 훈련이 대만의 주요 군사기지, 항구를 사실상 봉쇄한 형태라며 “문을 닫아 놓고 개(대만)를 패는 모양새”라고 했다. 또 서태평양에서 대만으로 접근하는 바시해협(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해협), 일본 오키나와에서 대만으로 가는 길목에 훈련 구역이 설정된 데 대해 “외세 간섭을 저지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미군 항모 전단의 대만 접근을 저지하겠다는 의미다. 또 중국 연안에서 실시되던 기존 실탄 사격 훈련과 달리 대만을 포위하는 이번 군사훈련이 “향후 대만 통일에 유리한 전략 조건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훈련 지정 구역이 대만 영해까지 미치거나 그것에 매우 가깝다”며 “대만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또 “대만군은 대만 영토를 수호할 것이며, 침략적 작전을 멈추기 위해 반격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대만 국방부는 4일 진먼, 마쭈 등 중국 본토와 인접한 섬 지역에 대해 경계를 강화했으며 대만 공군기지에서는 F-16, F-5 전투기가 이륙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대만해협 주변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대규모 군사 작전으로 대만 상공을 지나가는 항공편들은 노선을 조정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대만 TVBS방송은 하루 600여 편이 대만 상공을 지나는데, 중국군의 훈련 기간(만 3일)에 2000편 가까운 국제 항공편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