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지도부는 해마다 8월초가 되면 10여일 동안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보하이만의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휴가를 겸해 주요 현안을 논의하죠. 이걸 베이다이허회의라고 합니다.

중국은 올 하반기 시진핑 주석의 3기 집권과 차기 최고지도부 인선을 결정하는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죠. 당 대회가 있는 해의 베이다이허회의는 특별히 중요합니다. 사실상 최고지도부 인선이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이죠.

이번 베이다이허회의는 시 주석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현직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등뿐만 아니라 전직 최고지도부도 참여해요. 원로들이 제로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 등 실정을 거론하며 반대한다면 난감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습니다.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에 있는 베이다이허. 보하이만에 접한 이 해안 휴양지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집단으로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국가 현안을 논의하는 곳이다.

◇해외방문 재개...’황제 대관식’ 준비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2주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8월16일 공개 활동을 재개했어요. 베이다이허회의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베이다이허회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일절 공개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당 기관지 보도 내용 등을 보면 어느 정도 흐름을 짐작할 수 있어요. 중화권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이번 회의에서 연임에 대한 동의를 얻은 것으로 분석합니다.

가장 중요한 신호는 시 주석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월12일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죠.

베이다이허회의를 끝낸 시진핑 주석이 8월16일 랴오닝성 진저우에 있는 랴오선전투기념관을 방문하면서 공개 일정을 재개했다. /신화사 연합뉴스

시 주석으로서는 2020년1월 미얀마 방문 이후 거의 3년 만의 해외 방문입니다. 그동안 코로나 19 팬데믹을 이유로 해외 방문은 물론, 외국 인사의 베이징 방문조차 허용하지 않았죠. 작년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과는 첫 대면 회담을 갖는 셈입니다. 11월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4개국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보도도 있었죠.

미국 대통령과는 대등한 위치에서 제3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유럽 4개국 정상은 베이징으로 불러 접견하면서 ‘황제 대관식’ 장면을 연출하겠다는 뜻입니다. 퇴임하는 국가 주석이라면 이런 식의 이벤트를 준비하진 않겠죠.

◇당 기관지 통해 집권 3기 노선 제시

월스트리트저널에 정보를 제공한 정통한 소식통은 아마도 시 주석 쪽 인사일 겁니다. 베이다이허회의에서 연임이 확정됐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외부에 알린 것으로 보여요.

중국 국내에서도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당 기관지 ‘구시(求是)’는 8월16일 신발전이념에 관한 시진핑 주석의 기고문을 게재했어요. 시 주석의 지론인 공동부유노선을 필두로 개혁개방 심화, 녹색 성장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신발전이념을 제시하면서 “당 전체가 전면적으로 신발전이념을 관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권 3기 정책 기조를 제시한 거죠.

8월16일 시진핑 주석이 당 기관지 구시에 게재한 신발전이념에 관한 글. 집권 3기 정책 노선을 제시한 글로 지론인 공동부유 노선의 지속적인 추진을 강조했다. /구시

베이다이허회의 직후 가장 먼저 랴오닝성 진저우(錦州)에 있는 랴오선(遼沈)전투기념관을 찾은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랴오선전투는 국공 내전 당시 3대 전투 중 하나로, 공산당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 승리하면서 국민당 군에 대한 열세를 뒤집고 승기를 잡았죠. 혁명 원로 자제 출신으로서 피흘려 공산당 정권을 만든 선대 당원들에게 자신의 연임을 신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관영 매체, ‘제로 코로나’ 언급 안해

하지만 베이다이허회의가 시 주석의 일방적 승리로만 끝난 건 아닙니다. 이 회의 직후부터 중국 관영 매체와 당 기관지에서 ‘제로 코로나(動態淸零)’라는 말이 사라진 게 재미있는 현상이에요.

중국 남부 하이난섬은 8월초부터 코로나 19가 확산돼 확진자가 1만4000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방역 정책 총책임자인 쑨춘란 국무원 부총리가 8월13일 부랴부랴 현지로 가서 방역 활동을 지휘했는데, 늘 써오던 ‘제로 코로나’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하이난섬에 있는 외부 관광객이 15만명에 이른다고 수치를 공개하면서 이들의 귀가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하는 등 한결 유연해진 모습을 보였어요.

베이다이허회의 이후 첫 공개 일정으로 광둥성 선전을 찾은 리커창 총리가 8월17일 롄화산 공원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이 공원에 있는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 뒤 "개혁개방 노선은 중국의 기본시책으로 국제 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개방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신화사 연합뉴스

중화권에서는 시 주석이 베이다이허회의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둘러싸고 상당한 비판을 받았고, 결국 연임을 보장받는 대가로 제로 코로나 정책 완화에 동의한 것으로 분석합니다.

시 주석은 그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을 동원해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인 것을 대단한 업적인 것처럼 얘기해왔죠. 중국식 전체주의가 서방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걸 입증했다는 식으로 선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워낙 컸습니다. 상하이 등 대도시 봉쇄의 영향으로 2분기 성장률이 0.4%에 그쳤고, 7월 청년실업률은 20%까지 상승했죠. 베이다이허회의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고, 시 주석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