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중국 베이징의 한 아파트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EPA 연합뉴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의 베드타운(bed town)인 허베이성 옌자오 주민들 사이에서 ‘나체남’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아파트 단지에 수시로 나타나던 남자는 그곳에 집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한 때 1㎡당 4만위안하던 집값이 2만위안으로 떨어지고 도시 봉쇄 때문에 출근을 못해 직장에서도 잘리자 미쳤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며 “비슷한 상황을 겪는 주민들이 많다보니 남자를 동정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베이징 주변 베드타운의 상황이 중국 경제의 축소판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집값이 떨어지며 주민들의 소비력이 낮아지고 코로나 봉쇄 때문에 도시 기능이 수시로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랑팡시는 베이징과 인접한 인구 550만명의 도시다. 랑팡시의 시 중심 지역, 옌자오현 등은 2010년대 초반부터 베이징 배후 도시로 본격 건설됐다. 베이징의 과도한 확장을 억제하고 중산층의 주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특히 베이징 동부와 인접한 옌자오는 주민 60여 만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하루 2~3시간씩 걸려 베이징으로 출퇴근한다. 그래서 서울이 급격히 확장하던 시절 한국의 고양, 성남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수요가 몰리자 2010년 중반 이후 랑팡의 집값은 빠르게 상승했다. 2015년 1㎡당 7000위안이었던 주택 가격은 2016년말 2만위안까지 치솟았다. 옌자오의 경우 집값이 1㎡당 4만위안을 기록했다. 베이징의 높은 집값 때문에 주택 구매를 포기했던 젊은 부부들은 은행 대출을 받아 랑팡으로 몰렸다.

중국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베드타운을 급성장 시켰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톈진·허베이를 연결하는 한반도 면적의 거대 경제권인 ‘징진지(京津冀) 협동 발전’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베이징 동쪽 퉁저우에 시정부를 옮겨 부도심을 건설하고, 베이징 남쪽 100㎞에는 슝안신구라는 혁신도시를 만드는 계획이다. 그 연결 노선에 있는 랑팡은 최대 수혜 지역이었다. 한 한국 교민은 “각종 개발 계획이 나오고 베이징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한 일부 사람들이 옌자오 아파트로 갈아탄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랑팡 집값이 얼마 올랐더라”는 기사가 연일 나오자 랑팡시는 2017년 6월 강력한 부동산 거래 제한 정책을 도입했다. 랑팡 후커우(호적)가 없는 사람은 랑팡 지역에 3년 이상 사회보험료 등을 내 거주한 것이 증명된 경우에만 최대 주택 1채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랑팡 후커우가 있는 주민도 3채 이상 주택 구입이 금지됐고 주택 대출도 엄격해졌다. 랑팡 신샹 지역의 경우 신규 아파트 거래가 2016년 2만7000여건에서 2018년 2500여 건까지 급감했다.

“그래도 믿을 건 부동산뿐”이라는 기대에 거래량은 회복됐지만 2020년 코로나로 중국 경제가 얼어붙으며 부동산 시장이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중국 부동산 정보업체 이쥐에 따르면 랑팡시는 46개월 연속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중국에서 50개 도시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 도시로 뽑혔다. 가격 하락폭도 평균 20%에 육박해 50개 도시 가운데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한 랑팡 주민은 “집값이 떨어지자 다들 씀씀이를 줄였다”며 “대형 쇼핑몰의 경우 식당, 커피숍 등이 폐업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 봉쇄 정책도 베이징 인근 베드타운의 목을 조르고 있다. 코로나 방역은 지방 정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업무로 꼽힌다. 랑팡의 경우 베이징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방역이 특히 엄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사전에 예고없이 수시로 막혔다. 90만명이 사는 랑팡시 싼허의 경우 최근 베이징발 코로나 환자가 1명 확인되자 시 전체를 4일간 봉쇄했다. 한 랑팡 주민은 “베이징은 환자가 나와도 건물 1개 동만 봉쇄하는데, 랑팡은 환자가 1명 나왔다는 이유로, 또는 인근 베이징, 톈진에서 환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도시 전체를 봉쇄한다”며 “우리는 방역에서 2등 시민 대접을 받고 있다”고 했다. 랑팡에 공장을 둔 현대차 협력업체나 오리온 공장 등도 방역 때문에 직원들이 공장에서 먹고자는 비상 근무를 수시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다 못한 랑팡 주민은 지난 4월과 6월 최소 2차례 고속도로 등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를 벌였다. 옌자오 주민 1천여 명은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톨게이트에 모여 “통근을 허용하라” “밥 먹고 살게 해달라”고 외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옌자오의 주민은 “올해만 한 달 넘게 출근을 못했다”며 “IT 회사의 경우 재택 근무를 인정해 준 회사도 있지만 식당 같은 서비스 업종의 경우 출근을 못했다고 해고된 사례도 많다”고 했다. 랑팡이 수시로 봉쇄될 때마다 부동산 거래도 사실상 중단됐다.

경제가 나빠지자 랑팡시 당국은 지난 8월 5년간 유지해오던 주택 구입 제한 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많은 중국 지방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구매 제한을 완화하고 있지만 모든 제한 조치를 해제한 것은 랑팡이 처음이다. 하지만 중국 매체 신경보는 부동산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자신감과 신뢰 수준이 낮은데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