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오른쪽 두번째) 전 중국 국가주석이 행사가 끝나기 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며 시진핑(맨 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을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 폐막식 도중 퇴장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당대회 전체회의 겸 폐막식은 이날 오전 9시 시작했다. 당대표들은 투표함에 중앙위원, 중앙기율검사위원 투표 용지를 넣는 방식으로 표결을 진행했다. 오전 11시 외신들이 인민대회당 2층에 입장했다. 후 전 주석은 오전 11시 15분쯤 수행원에 이끌려 회의장을 떠났다. 외신을 통해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업무보고, 당 헌법 격인 당장 개정안 찬반을 거수로 표결하기 직전이었다.

후 전 주석은 이날 폐막식에서 당대회 연단 맨 앞줄, 시 주석 옆에 앉았다. 수행원이 후 전 주석의 상태를 살피더니 팔을 잡아끌었다. 자리에서 일으키려하자 후 전 주석이 짜증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일어난 후 전 주석은 시 주석에게 짧은 말을 건넸고, 나가면서 리 총리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리 총리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갑작스런 후 전 주석의 퇴장에도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정면만 바라봤다.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예의를 갖추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려하자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가 옷을 잡아 앉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리 상무위원장은 당황스러운 듯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후 전 주석이 먼저 퇴장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외신 기자들이 지켜보는 상황이었고, 주변에서 먼저 일어나도록 권유한 것으로 볼 때 장시간 회의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시 주석의 전임 최고지도자가 당 최대 정치행사에서 황망하게 자리를 뜨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후 전 주석의 퇴장 장면을 찾을 수 없다.

1942년생인 후 전 주석은 2012년 10월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퇴임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인 후 전 주석은 애초 격대지정(물러나는 지도자가 차차기 후계자를 낙점하는 것) 전통에 따라 공청단 출신인 후춘화 부총리를 시 주석의 후계자로 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후 부총리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최고지도부)에 선임되지 못하며 이런 구상을 실현하지 못했다. 시 주석은 22일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해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으로 이어진 10년 단위 평화적인 지도자 권력 교체 전통을 깨고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시진핑 2기에서 최고지도부를 구성했던 리커창 총리,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후 전 주석과 같은 공청단 출신이다. 공청단은 역사가 100년 됐지만 실제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후야오방(1915~1989년)이 ‘개혁·개방의 젊은 피’로 공청단 인사들을 발탁하며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상대적으로 자유주의, 친시장 입장을 견지하고 정치개혁에도 적극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시진핑 2기에서도 리커창 총리, 왕양 주석이 시 주석 견제 세력으로 평가돼왔다.

하지만 시진핑 3기에서 공청단 출신 인사들은 권력에서 퇴장하게 됐다. 리커창 총리, 왕양 주석은 22일 발표된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위원 명단에서 빠지면서 시진핑 3기 최고지도부 진입에 실패했다. 시 주석은 푸젠, 저장 등에서 과거 자신과 함께 근무했던 인사, 항공, 우주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관료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청단 출신인 후춘화 부총리가 23일 공개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공청단 출신 지도부 시대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