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시민 수백명이 당국의 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중국 중앙정부가 ‘과학 방역’을 강조하며 과도한 통제를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방역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으면서 시민 불만이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14일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에 따르면 광저우 하이주(海珠)구 시민들이 한밤중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방역 당국이 주민 이동을 막기 위해 세워 놓은 바리케이드를 쓰러뜨리고 코로나 검사 천막을 부쉈다. 소수의 방역 요원들이 말렸지만 시민들은 휴대폰을 이용해 행진 장면을 촬영하고,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하이주구 일부 지역은 20일 넘게 봉쇄된 상태다.

15일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 광둥성 광저우의 시민들이 방역 당국이 세워 놓은 바리케이드를 쓰러뜨리며 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AFP 통신은 시위대가 “검사는 그만”이라고 외치며 경찰에 바리케이드 파편을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로이터 뉴스1

중국 인터넷에는 해당 영상과 함께 “광저우에 거주하는 후베이성 출신들이 물자 배분 등에 불만을 갖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글이 올라왔지만 대부분 삭제된 상태다. 중국 정부가 3년 가까이 코로나 검사, 지역 봉쇄, 이동 통제 등의 강력한 통제를 하면서 광저우뿐 아니라 충칭, 라싸 등 다른 지역에서도 주민이나 농민공(시골 출신으로 다른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의 집단 항의가 잦아지고 있다.

중국 당국의 일방적인 방역은 곳곳에서 시민들의 고통을 유발하고 있다.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싼위안차오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낮 12시부터 고층 아파트 6동과 주변 지역에서 수백명이 몰려와 코로나 검사를 하는 임시 천막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오후 3시쯤 줄은 1㎞ 가까이 됐다. 단지 밖 도로까지 늘어선 이들은 기온이 1도로 떨어진 쌀쌀한 날씨에도 3시간 넘게 기다려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했다. 직장인 양모(32)씨는 “차오양구가 오늘 갑자기 24시간 내에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으면 구내 공공장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공지를 내렸다”면서 “소식을 듣고 ‘쉬밍(續命·목숨 연장)’하러 나온 것”이라고 했다. 쉬밍은 코로나 음성을 받아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같은 날 오후 9시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는 잠옷 바람의 20여 명이 나타났다. 낮에 줄 서기에 실패한 차오양구 주민들이 대기 줄이 짧다는 소식을 듣고 공항 검사 시설까지 달려온 것이다. 반바지 차림의 톈모(39)씨는 “퇴근 후 밥도 못 먹고 차를 타고 검사 시설을 찾아다녔다”면서 “베이징에 30여 년간 살면서 오늘이 가장 화나는 날”이라고 했다. 그는 베이징 주요 병원의 PCR 검사 예약은 이날 아침 일찍 마감됐다고 했다. 베이징의 24시간 검사 시설 118곳은 심야까지 야근을 마친 직장인들로 붐볐다.

베이징에선 낮에도 밤에도 줄을 선다.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싼위안차오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코로나 검사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위) 이날 오후 기온이 1도까지 떨어졌지만 대기 행렬이 한 때 1㎞에 달하기도 했다. 이날 밤에는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시민들이 공항에 방문했다.(아래) 중국 정부가 방역 완화를 공언하고 있지만, 전국 지자체에선 오히려 방역을 강화하는 등 ‘엇박자’가 이어지고 있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이날 대란은 중국 정부가 지난 11일 해외 입국자 격리 기간을 단축하고 대규모 지역 봉쇄를 제한하는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발생했다. 베이징 인구의 16%(350만명)를 차지하는 차오양구는 최근 구(區) 내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해 하루 100명에 육박하자 기습적으로 코로나 검사 주기를 기존 3일에서 24시간으로 바꾸고, 거리나 사업장에서 운영하던 PCR 검사 시설을 확산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폐쇄했다. 오늘 당장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검사 시설을 줄인 것이다.

15일 중국 베이징의 한 PCR 검사 시설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전날 중국의 신규 코로나 감염자는 1만7432명(무증상자 1만6248명)으로 도시 봉쇄 조처가 내려졌던 지난 4월 25일(1만6729명) 이후 6개월여 만에 가장 많았다./AP 연합뉴스

중앙정부가 방역 완화를 공언했지만 전국 지자체에선 오히려 방역을 강화하는 ‘엇박자’를 내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지난달 말 2000명대에서 13일 1만6072명으로 급증하며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지방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잘못했다간 현 정권의 최대 업적인 ‘제로 코로나’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상시 PCR 검사와 격리가 장기화되면서 지방정부 재정도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 검사 가격은 초기 1인당 20위안(약 3800원)에서 3위안(약 600원)으로 내려갔지만, 검사 횟수가 늘어 전체 금액은 커졌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국유기업 관계자는 “산시성, 장시성 등에서는 지방정부가 다른 공공 프로젝트 자금을 끌어와 코로나 검사에 쓰고 있고, 청두시의 공무원들은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은행연구원은 최근 “3일마다 9억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면 연간 1000억달러(약 132조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지방정부들의 곳간이 비면서 PCR 검사 업체들도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올해 1~3분기 중국 9개 주요 PCR 검사 회사의 미수금은 362억위안(약 6조9000억원)에 달한다.

중국 상하이 일부 지역이 일시 봉쇄했을 당시의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베이징의 한 음식점 주인은 “방역 조치로 자주 가게를 닫게 되면서 최근 매출이 작년의 3분의 1로 줄었고, 서빙 직원들도 전부 내보냈다”고 했다. 한 한인 사업가는 “베이징에서 지방으로 출장을 가면 3주 이상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흔해 아예 해외에 나갔다가 돌아오라고 충고한다”고 했다. 코로나 방역과 관련된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인 ‘베이징파부’ ‘젠캉바오’에는 “이제 불편을 넘어 공포가 느껴진다” “삶이 망가졌다”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됐다.

중국의 악순환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중소도시 의료 인프라가 대규모 감염자를 치료할 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80세 이상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2차 접종 완료 기준)이 65.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mRNA 계열 백신(모더나·화이자)도 허가하지 않은 상태다. 충칭의 의료 업계 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중국인들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효능이 낮은 중국산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즉각 격리 해제 시 대규모 감염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