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 수가 급증하며 역대 최고치에 근접, 중국 정부가 긴장하고 있다. 중국 국가질병통제국은 22일 “유동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 감염자가 확산하고, 방역 인력과 자원 부족으로 예방과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코로나 상황 악화를 인정, 중국 내 코로나 감염자가 더 확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의료 인프라가 불충분한 곳이 많아 코로나가 빠르게 번지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해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23일 중국 보건 당국인 국가위생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중국 본토 신규 확진자는 2만8883명으로, 상하이 봉쇄 기간이었던 지난 4월 13일 기록했던 역대 최다 일일 신규 확진자 수(2만9317명)와 434명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이달 들어 중국에서는 매일 1000명씩 확진자가 늘어 22일까지 누적 확진자 수는 30만명에 육박한다. 중국 전역에서 신규 확진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광둥성(8811명)과 충칭시(6943명)이고,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대(12일)였던 수도 베이징은 10일 만에 10배가 넘는 1486명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하자 긴급 조치를 내리고 있다. 베이징 시정부는 24일부터 48시간 이내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증명서를 소지한 사람만 회사, 상점 등 공공장소 출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중교통 탑승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베이징 16개 구(區) 가운데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차오양구는 14일부터 자체적으로 PCR 검사 주기를 24시간으로 줄이면서 열흘 가까이 시민들이 한 시간씩 줄을 서서 검사를 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검사 줄이 짧은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의 검사소에 가거나 인근 구(區)로 ‘원정 검사’를 가고 있다. ‘식당 내 취식 금지령’도 내려졌다. 이 때문에 식당들은 문 앞을 테이블로 막고, 포장·배달 주문만 받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원이나 관공서를 방문한 시민들은 식사할 곳을 찾지 못해 건물 계단이나 야외 벤치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PC방, 사우나, 헬스클럽, 영화관 등 실내 밀집 시설을 폐쇄했다.
이달 중순 고강도 방역에 불만을 품고 집단 시위를 벌였던 광저우 하이주구에서는 확진자 급증으로 봉쇄가 계속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현지에 무장경찰이 투입돼 질서 유지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과학 정밀 방역’ 방침을 세웠던 광저우가 21일 시 관할 11개 구를 봉쇄했다고 전했다.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장기 봉쇄됐던 후베이성 우한은 21~25일 시내 5개 구의 쇼핑몰과 음식점 등을 운영 중단하고, 재택근무를 명령하며 반(半)봉쇄 상태로 전환했다.
도시 간 인적 교류도 사실상 중단됐다. 청두시는 도시를 떠나려면 48시간 이내 PCR 검사 음성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고 24일 밝혔다. 상하이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공공 장소 출입을 5일 동안 제한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도시 밖을 나가면 돌아오기 힘드니 차라리 해외로 갔다가 입국하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지난달 11일 중국의 방역 완화 정책(20개 조치·二十條措施) 발표를 계기로 시도됐던 ‘위드코로나’ 실험은 전면 중지됐다. 1000만 인구의 대도시인 허베이성 스자좡시는 지난 12일 ‘모든 시민에 보내는 서한’에서 “모든 사람은 본인 건강의 제1 책임자”라는 이례적 표현을 썼다. 이튿날에는 시내 PCR 검사소를 모두 폐지하고 공공장소와 대중교통 사용 제한을 없앴다. 그러나 도시의 확진자가 하루 500명씩 늘고 공포에 빠진 시민들이 아이들을 집에 가두고 감기약 사재기에 나서자 지난 21일부터 5일간 6개 구에서 매일 전원 대상으로 PCR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는 코로나 대응 화상 회의가 열리고, 각급 지도자들의 현장 시찰이 실시되고 있다. 중국 국영 CCTV는 21일 의료·보건 등을 담당하는 쑨춘란 부총리가 충칭의 코로나 방역 실태를 시찰하고 “지체 말고 역량을 집중해 코로나 섬멸전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취임한 인리 베이징시 당서기는 22일 베이징 차오양구, 순이구를 시찰하며 코로나 대응을 위해 팡창(方艙)병원(간이병원) 운영 상황을 점검했다.
전문가들은 이달 들어 중국 당국이 방역 완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예상보다 빠르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지난달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집권 3기가 확정되면서 ‘제로 코로나’ 성과 부담이 줄었다. 또 올해 들어 중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대규모 감원과 높은 실업률이 사회 문제가 되고, 상하이·광저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방역 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방역 완화를 시도할 명분이 됐다. 그러나 20차 당대회의 폐막일이었던 지난달 22일 838명에 불과했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이달 중순 2만명을 넘어서자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할 경우,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중소도시 의료 인프라는 대규모 감염자를 치료할 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80세 이상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2차 접종 완료 기준)은 65.7%에 불과하다. 중국은 mRNA 계열 백신(모더나·화이자)도 허가하지 않은 상태라 백신 접종자들의 코로나 면역 수준도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 감염자, 사망자를 축소 보고하더라도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언로를 막기도 어렵다. 2020년 우한 봉쇄 당시 중국 당과 정부는 유명 작가 팡팡이 우한 참상을 고발한 일기인 ‘우한일기’, 코로나 발생 사실을 가장 먼저 외부에 알리고 사망한 ‘리원량’ 추모 등으로 크게 곤혹을 치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