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열린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반중(反中) 성향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참패하고, 중국에 우호적인 제1야당 중국국민당(국민당)이 승리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에서 물러났다. 대만연합보는 “민진당이 1986년 9월 창당 이래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대의 참패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오는 2024년 1월 실시되는 총통 선거를 약 14개월 앞둔 상황에서 민진당이 패배하면서 차이잉원 총통이 빠르게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야당 국민당 지지자가 지방선거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7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선거 결과에 따르면 민진당은 21개 시·현 중 5곳에서만 당선자를 냈다. 반면 국민당은 직할시 4곳을 포함, 13곳에서 승리했다. 수도 타이베이에서는 장제스 전 총통의 증손자인 국민당 소속 장완안(44) 후보가 당선됐다. 지난 2일 무소속 후보자가 사망해 다음 달 18일 별도로 투표가 실시되는 자이시 시장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 언론들은 “차이 총통 집권 이후 지속해온 ‘항중보대(抗中保臺·본토에 대항해 대만을 지키자)’ 카드의 효력이 떨어졌고, 코로나 대응 실패와 민생 문제가 심판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선거 결과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26일 밤 “평화·안정을 원하고,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대만의 민의가 반영됐다”면서 “대만 동포들과 함께 분열과 외부 세력 간섭을 단호히 반대하겠다”고 했다.

대만 집권 민진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창당 이래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 1986년 ‘대만 독립’을 내걸고 등장한 민진당이 그동안 실시된 9차례 선거에서 당선자가 5곳에 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5차례에 걸쳐 6곳에서 당선자를 낸 적이 있다. 1997년(12석)과 2014년(13석) 선거에서는 대승을 거뒀고, 이를 기반으로 2~3년 뒤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이겼다.

민진당 참패는 중국 본토 위협에 맞서 민심 결집을 호소한 전략이 민생 문제에 대한 정권 심판론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차이 정부가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물가가 오르는데도 민생을 돌보지 않고 외교 담론만 쏟아낸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차이 총통은 투표 직전에도 “전 세계가 중국의 군사 훈련과 20차 당대회 직후 열리는 이번 (대만) 선거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만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결심을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대만 경제일보는 27일 “정부는 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5000달러를 넘었다고 크게 홍보했지만, 청년들의 월급은 줄고 부동산 가격은 오르는 등 양극화는 심해졌다”고 비판했다. 홍콩 명보는 사설에서 민진당 지지층인 고학력 젊은층의 밀집 거주 지역인 타오위안과 신주에서 민진당이 패배한 점을 들며 “청년층이 민진당을 버렸다”고 했다. 왕쿵이 대만국제전략연구회 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서 “대만의 초기 기민한 코로나 대응은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았지만, 이후 정부가 충분히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코로나 사망률이 높아졌다”고 했다. 차이 정부가 2025년을 목표로 추진한 탈원전 정책도 전력난 우려를 키우면서 민진당에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됐다.

미·중 관계도 이번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중이 지난 14일 양국 정상 회담 이후 통상·군사 분야에서 대화를 재개하며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되자 대중 강경파인 민진당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중국 본토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국민당을 지지해 양안(본토와 대만)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정서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장제스 대만 초대 총통의 증손자이자 장징궈 전 총통의 손자인 국민당 장완안 후보가 26일 수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주먹을 치켜들며 자축하고 있다. 올해 44세인 장완안은 '타이베이 역대 최연소 시장'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AP 연합뉴스

한편, 제1야당인 국민당은 이번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총통 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국민당에서는 주리룬(朱立倫) 당 주석과 폭스콘의 궈타이밍(郭臺銘) 창립자 등이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된 장완안은 차차기를 노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선거 패배로 차이잉원 총통의 레임덕이 앞당겨지면서 민진당도 총통 선거 모드로 전환될 전망이다. 민진당의 차기 총통 후보로는 반중 강경파로 분류되는 라이칭더(賴淸德) 부총통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결과가 총통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민당은 2018년에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지만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의 재선을 막지 못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이번 선거로 국민당은 2024년 정권 탈환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게 됐지만 어떻게 ‘친중 꼬리표’를 떼고 대미 관계를 돌파할지는 숙제”라고 지적했다. 홍콩 명보는 “지방선거 결과를 토대로 총통 선거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