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중국은 상황이 정반대이다. 작년 12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05%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올 4월과 5월, 8월에 잇달아 대출 금리를 내렸다. 11월 26일에는 은행 지급준비율을 0.25% 인하해 시중에 5000억위안(약 93조원)의 돈을 풀기로 했다.

이런 엇박자 행보를 하는 건 1년 이상 추락을 거듭하는 부동산 경기의 안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동산 기업 돈줄 죄기에 앞장서온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관리감독위는 11월 11일 부동산 기업들의 대출 상환 기간을 1년 연장해주는 내용의 16개 금융 지원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집값 14개월 연속 추락

중국 부동산은 작년부터 맥없이 추락하고 있다. 작년 9월 전국 70개 주요 도시의 집값이 내림세로 돌아선 이후 올 10월까지 14개월 연속으로 집값이 떨어졌다. 베이징, 상하이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시가 집값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 하락 속에 신규 분양 주택 판매액도 급감하는 추세이다. 올 2월까지 작년 동기 대비 -19.3%가 감소했고 5월까지는 -31.5%까지 폭락했다. 주택 수요자들이 집값 하락을 예상하고 분양을 꺼리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집계해 발표하는 부동산 경기 지수도 올 10월 94.70까지 하락했다. 부동산 경기지수는 100 이상은 호경기, 이하는 불경기를 의미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금융 당국이 부동산 시장 지원을 위한 패키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단기적으로 숨통을 터주는 정도로 시장 전반의 위축된 심리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수요자들이 부동산 투자 대신 은행에 돈을 넣으면서 9월까지 은행 예금이 기록적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연착륙 대책이 부른 대혼돈

중국 부동산은 1998년 주룽지 당시 총리가 기존의 주택 배분 제도를 폐지하고 주택 상품화 시대를 연 이후 20여 년 동안 줄곧 상승 가도를 달려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등 일시적인 하락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올라 ‘부동산 불패’ 신화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중국 부동산 거품이 1991년 거품 붕괴 당시의 일본보다 더한 수준으로 거품 붕괴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중국 국내외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광둥성 선전과 베이징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각각 57배와 55배로 1990년대 거품 붕괴 당시 도쿄(18배)보다 훨씬 높다. 국무원(정부) 발전연구센터 거시경제연구실 부주임을 지낸 경제학자 런즈핑(任澤平)은 작년 7월 언론 기고문에서 “2020년 기준 중국의 주택 시가총액은 62조6000억달러로 미국(33조6000억달러)의 2배, 일본(10조8000억달러)의 6배 수준”이라며 중국 정부에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정책 수립을 촉구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 8월부터 대형 부동산 업체의 부채 비율을 대폭 내리고 현금 보유 비율을 올리는 내용의 ‘3개 레드라인’을 제시하며 시장 압박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조치가 부동산 대란의 단초가 됐다. 단기간에 부채를 줄이기가 쉽지 않았던 헝다그룹 등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줄줄이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부동산 시장 전반이 대혼돈에 휩싸인 것이다.

개발 업체들이 자금난 속에 제때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서 입주가 무기 연기되는 아파트 단지가 속출했다. 올 초부터는 입주 예정자들이 “언제 입주할지 모르는데 더 이상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환금을 내지 않겠다”며 모기지 상환 거부 운동에 들어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국적으로 집단 상환 거부에 나선 아파트 단지가 3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모기지 상환 거부는 입주 예정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지방 상업은행의 도산으로 이어져 금융 위기로 번질 조짐까지 보인다. 여기에 과도한 코로나 19 방역으로 소비·투자 등 경제 전반이 위축되자 중국 정부는 부동산 구조 조정을 일시 중단하고 시장 지원 정책까지 내놓고 있다.

“일본보다 더한 거품 붕괴 올 것”

중국은 부동산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에 이른다. 주택 담보 대출이 은행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0%를 넘는다. 부동산은 철강, 화학, 가전, 가구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커 거품 붕괴는 중국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경제산업연구센터(JCER) 콴즈슝 선임연구원은 올 2월 보고서에서 “중국 철강 생산량의 59%가 부동산 분야에서 소비된다”며 “부동산 시장 하락은 실물 경제와 금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부동산이 1990년대 초반 일본 거품 붕괴 때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수렁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과도한 부동산 거품, 미중 무역 마찰, 인구의 급격한 고령화 등이 1990년대 거품 붕괴 당시 일본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파노스 무도쿠타스 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는 지난 7월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 부동산은 거품 붕괴 직전”이라며 “중년 인구의 감소와 급격한 노령화 등 인구 측면에서 불리해 일본보다 더한 거품 붕괴를 겪을 수 있다”고 썼다.

반면, 콴즈슝 선임연구원은 “거품 붕괴 당시 일본은 선진국이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며 “거품이 붕괴하더라도 5% 전후의 성장률을 유지한다면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 침체는 겪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방정부도 비상… 재정 수입 42% 차지하는 토지매각 급감]

올 상반기 31.4%나 줄어… 재정 적자는 작년 3배로 급증

중국 부동산 업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지난해 중국 각 지방정부에서는 분양 주택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분양하는 것을 금지하는 ‘분양가 하한제’를 잇달아 도입했다. 업체들이 시세보다 20~30% 싼 가격에 아파트를 할인해 분양하는 것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토지 매각 수입

지방정부들이 이처럼 ‘분양가 하한제’까지 도입하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가 토지를 부동산 개발업체에 아파트용 부지로 팔아 거두는 ‘토지 양도금(土地出讓金)’ 수입이 한 해 지방 재정의 4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살림살이가 부동산에 달렸으니 시세 하락을 방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년 토지 양도금 수입이 지방 재정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1.5%나 됐다. 저장성, 장쑤성 등 경제가 발달한 동부 연안 지역은 그 비율이 50%를 넘는 곳도 있다.

1982년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에서 처음 걷기 시작한 토지 양도금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2020년에는 전년보다 15.9%가 증가한 8조4142억위안(약 1560조원)으로 처음으로 8조위안대의 벽을 넘었다. 하지만 부동산 위기가 본격화된 2021년에는 증가율이 3.5%로 크게 둔화했고, 올해는 2조3622억위안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31.4%나 급감했다.

지방 재정은 민생과 직결된다. 코로나19 방역 비용은 물론, 양로연금과 의료보험 같은 복지 예산도 모두 지방 재정이 부담한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토지 양도금 수입이 줄면서 지방 정부 재정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중앙과 지방을 합친 중국의 재정 적자는 올 들어 9월까지 7조1600억위안으로 작년 동기(2조6000억위안)의 3배 수준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