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코로나 방역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확산하는 가운데 일부 대도시가 방역 조치를 대폭 완화하면서 주민들이 또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 얼마 전까지 “방역 완화”를 외치던 이들이 ‘방역 완화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에서는 독감약과 가정용 산소 호흡기 등을 사재기하는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1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서는 ‘해열제인 이부프로펜 한 통(24알), 기침약 유메이사펀 한 병(150mL)을 사 놓으라’는 문자가 빠르게 퍼졌다. 코로나 자가 치료를 위한 약품을 추천한 내용이다.
이날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약국에서는 이런 약들을 묶어서 판매하고 있었다. 인근 고급 주택단지에서는 최근 80만원대 산소 호흡기 ‘공구(공동 구매)’에 나섰다고 한다. 베이징의 한 직장인은 “자가 격리를 위해 위생용품과 소독제, 과일 등 생필품을 미리 대량으로 사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모인 소셜미디어 단톡방에서는 “코로나 정책을 풀었으니 시위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당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 1일 신화통신은 평론에서 “방역은 각자의 일”이라며 “본인 건강의 ‘직접 책임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위드 코로나’ 실험에 나섰던 허베이성 스자좡시가 “모든 사람은 본인 건강의 제1 책임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와 비슷한 문구가 재등장한 것이다. 중국의 방역 사령탑인 쑨춘란 부총리는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날도 오미크론이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해 덜 치명적이라고 언급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우한대 연구진의 실험을 인용, 오미크론의 위험성이 약하다고 전했다.
베이징과 광저우에서는 최근 경증 환자와 노약자, 임신부 등의 자가 격리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확진자가 발생해도 아파트 단지 전체 대신 동(棟)이나 몇 개 층만 봉쇄하고 있다. 상하이는 ‘봉쇄도 빠르게, 해제도 빠르게’라는 원칙을 최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두·충칭·쿤밍·정저우에서도 봉쇄 조치가 대폭 완화됐다.
일각에서는 오는 6일 열리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 추도대회’를 앞두고 정부가 방역을 크게 완화하며 주민들의 누적된 불만을 해소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를 선언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중국은 백지 시위 이전인 지난달 11일 방역 완화 지침을 내놓았고, 상황에 따라 방역 수위를 조절해 왔다. 현재는 최상부의 방역 지침은 옳았지만, 일선에서 실행할 때 단서가 추가로 붙는 것[層層加碼]이 문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역 완화로 인한 의료 대란이 생길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레이하이차오 부주임은 지난달 “중국의 의료 병상은 1000명당 6.7개, 중증 환자 병상은 10만명당 4개에 불과해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