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한 대형 쇼핑몰 전광판에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을 알리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견제해온 장 전 주석의 사망을 계기로 전국에서‘백지 시위’가 격화할 수도 있다고 보고 긴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 방역’ 반대 시위가 일어난 상황에서 장쩌민(96) 전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사망, 이번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견제해 왔던 장 전 주석의 사망으로 전국에서 ‘백지 시위’가 격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으로 촉발된 1989년 톈안먼 시위와 유사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야오방은 1982년 총서기에 올랐지만 1986년 발생한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실각했다. 그가 1989년 4월 사망하자 전국에서 추모 분위기가 일기 시작해 같은 해 6월에 톈안먼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결국 유혈 진압으로 이어져 중국 공산당은 국내외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지난 1976년 저우언라이 총리 사망을 계기로 일어난 추모 행사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4·5운동으로 이어진 것도 중국 정부를 긴장하게 하는 역사다.

중국 정부는 장 전 주석을 대대적으로 추모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시위로 격화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애쓰고 있다. 홍콩 명보는 1일 중국이 장 전 주석에 대해 1997년의 덩샤오핑 사망 때와 동급으로 국가적 예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 전 주석의 부고는 마오쩌둥·덩샤오핑 사망 때와 같은 ‘전당, 전군, 전국 각 민족에게 보내는 서한’의 형식을 채택했다. 부고의 글자 수는 5190자로, 마오쩌둥(2360자), 덩샤오핑(4970자)에 비해 오히려 늘었다. 장 전 주석에 대한 호칭도 덩샤오핑 사망 당시와 같은 호칭을 사용했다.

부고에서는 시장 경제 확립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상대적으로 작게 다루고, 톈안먼 사태(정치 풍파)는 두 차례나 언급했다. 그가 톈안먼 사태를 잠재운 인물이란 점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추모하는 형태로 시위가 격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장 전 주석의 장례는 6일 오전 10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장(國葬) 격인 ‘추도대회’로 엄수된다고 중국 정부가 1일 오후 밝혔다. 홍콩 명보는 “시진핑 주석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과거 중국의 지도자들이 사망하면 베이징의 상징적 장소에 ‘영당’을 꾸며 조문을 받고, 추도 행사를 치른 뒤 시신을 화장해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 묘지에 안장했다. 앞서 1976년 마오쩌둥의 장례식은 인민대회당과 천안문 광장에서 9일 동안 국장으로 치르는 동안 100만명이 조문했다. 그의 시신은 특수 방부 처리돼 톈안먼 광장의 마오쩌둥 주석 기념관에 안치됐다. 1997년 덩샤오핑의 장례식은 인민대회당에서 6일장으로 치러졌다. 당시 장례위원장이 장 전 주석이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는 1일 홈페이지를 흑백으로 바꿔 조의를 표했다. 전날 국영 CCTV의 메인 뉴스인 신원롄보는 1시간 8분 방송 중에 장 전 주석 사망 소식을 48분 동안 내보낸 후 시 주석과 관련된 뉴스를 소개했다. 명보는 “시 주석이 메인 뉴스에서 이번처럼 늦게 등장한 것은 최근 1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정치 평론가 장리판은 “시 주석은 상사(喪事)를 이용해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고립된 상황을 타개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어르신[長者], 장할아버지[江爺爺],위인(偉人) 등의 표현을 쓰며 장 전 주석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중국의 시위대는 당분간 장 전 주석의 추모 분위기를 관망하며 대응 방향을 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1일 시위 참가자들이 모인 한 소셜미디어 단체 채팅방에서는 “당국의 시위 단속이 최장 한 달 동안 강화될 테니 당분간 활동을 줄이자”는 의견이 주류였다. 장 전 주석은 톈안먼 시위를 계기로 권력을 잡았고, 파룬궁 등 종교 집단을 탄압했던 전력이 있어 학생 시위대에 온정적이었던 후야오방과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뉴질랜드 중국학자 게레미 바르메는 미 뉴욕타임스(NYT)에 “후야오방도 생전에 별다른 명성이 없었는데 사망 후 영웅 열사가 됐다”며 “같은 일이 장쩌민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고 했다.

장 전 주석의 사망으로 시 주석의 정치 권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장 전 주석이 이끌어온 상하이방은 시 주석 집권기에 급속도로 세력이 약화됐지만 그는 상징적으로나마 시 주석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 거물로 평가돼왔다. 2018년 중국 공산당이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해 시 주석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자 장 전 주석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외신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