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중국의 방역 완화를 언급했다.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코로나 방역 정책을 유지해온 중국이 ‘위드 코로나’ 단계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톈진, 선전, 청두 등 대도시 10여 곳에선 시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PCR(유전자증폭) 검사 음성 결과를 지참하지 않아도 탑승을 허용하기로 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일 베이징에서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과 가진 회담에서 “중국에서 확산 중인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델타 바이러스와 비교해 덜 치명적이라 봉쇄 완화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이미 규제를 풀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시 주석은 또 최근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백지 시위에 대해 “코로나 방역으로 제한을 받은 이들은 주로 학생과 청년층이고, 이들이 지난 3년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홍콩 명보는 “백신 부스터샷 접종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의료 인프라가 충분히 준비된다면 내년 춘제(중국 설) 직후인 2월에 ‘제로 코로나’를 전면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당국은 엄혹했던 방역 정책의 완화에 속도전을 하고 있다. 베이징은 2일 방역 기자회견에서 “5일부터 베이징에서 버스·지하철 탑승 때 48시간 내 PCR 검사 음성 결과가 없어도 된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코로나 확산세로 문 닫았던 베이징의 쇼핑몰 19곳은 3일부터 식당 내 취식을 제외한 정상 영업에 돌입했다. 광저우는 대중교통뿐 아니라 실내 공공장소에서도 PCR 검사 음성 결과를 면제했다. 백지 시위를 촉발한 화재 사고가 발생했던 우루무치의 방역 당국은 코로나 확산세가 덜한 지역의 쇼핑몰, 수퍼마켓, 호텔, 식당 등의 영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 광저우, 충칭 등에서는 코로나에 확진된 노인·임신부 등의 자가 격리를 허용하고 있다. 상하이와 스자좡은 ‘빨리 봉쇄하고 빨리 해제한다’는 방침 아래 주거지 봉쇄 기간과 범위를 줄였다.
중국 금융권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곧 새 방역 완화 대책인 ‘10가지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새 대책은 PCR 검사 대상을 대폭 줄이고, 자가 격리를 허용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본토와 홍콩 간 이동 장벽도 이르면 이달 10일부터 해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본토에서 홍콩에 가면 별도 격리 없이 바로 활동할 수 있지만 홍콩에서 본토로 들어오는 경우는 해외 입국자와 마찬가지로 8일간 격리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국이 코로나 방역을 위해 닫았던 문을 외부에 개방하겠다는 첫 신호”라고 했다.
중국이 방역 기조를 급선회한 이유는 방역 반대 시위가 반(反)체제 시위로 번지기 전에 빠르게 수습할 필요가 있었고, 경제 악화 등으로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중국은 노선 변경에 대해 ‘최상부의 방역 지침은 옳았지만, 일선에서 실행할 때 단서가 추가로 많이 붙은 것[層層加碼]이 문제였다’고 설명하며 중앙 정부를 향한 비판도 차단하고 있다. 방역 완화 기조가 명확해지고,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시위대는 관망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아 있다. 중국은 지난달 11일 20가지 방역 완화 조치를 내놓고 스자좡 등 일부 지역에서 위드 코로나 실험에 나섰지만, 확진자가 급증하자 며칠 만에 봉쇄 중심 정책으로 회귀했다. 중국은 약 한 달 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강제적 수단 대신 간접적인 유도책을 구사하고 있다. 일례로 베이징에서는 주거지 봉쇄나 대중교통 탑승 등의 제한을 대폭 풀었지만, 실내 출입 시 PCR 음성 검사 결과 제시 의무는 유지하고 있다. 또 도시 내 PCR 검사소를 줄여 시민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 검사 하려는 사람을 줄여 통계상 확진자 수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방역 완화 속도 조절에 실패할 경우 중환자와 사망자가 단기간에 폭증할 수도 있다. 네이처 의학지에 실린 미·중 연구진의 합동 분석에서는 중국이 백신 접종률을 높이거나 의료 인프라 확충 없이 방역을 완화하면 사망자 수가 15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구진은 중환자실 입원 수요가 수용 가능치의 15배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