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7일 전 세계에서 가장 엄혹했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10가지 방역 추가 최적화 조치에 대한 통지’를 발표했다. PCR(유전자 증폭) 검사, 확진자 시설 격리, 주거지 장기 봉쇄, 지역 간 이동 금지 등 그동안 중국 국민의 삶을 짓눌렀던 주요 제한을 대부분 해제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단계적 일상 회복’ 전환이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중국 국무원이 이날 발표한 조치에 따르면 공공장소 출입을 위해 1~3일 간격으로 받아야 했던 ‘상시 PCR 검사’와 코로나 확산 지역에서 강제 실시했던 ‘전수 PCR 검사’가 모두 폐지됐다. 요양원, 의료기관 등 노약자가 밀집한 장소에 갈 때만 PCR 음성 결과를 내도록 했다. 무증상·경증 확진자의 경우 시설이 아닌 ‘자가 격리’를 할 수 있게 했다. 주거지 장기 봉쇄 조치도 없앴다. 코로나 고위험 지역이라도 5일 연속 확진자가 나오지 않으면 즉시 봉쇄를 해제토록 했다. 지역 간 이동 시 PCR 검사 음성 결과와 과거 동선 정보를 제시해야 하는 의무도 폐지됐다. 조업·생산·영업 중단도 금지된다.
중국이 극적인 방역 완화에 나선 것은 지난달 말부터 전국으로 번진 ‘백지 시위’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방역에 대한 단순 항의가 전국적 차원의 반(反)체제 시위로 악화할 기미를 보이자 이에 놀란 중국 집권 세력이 방역 완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또 외국계 기업이 이탈하고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 더 이상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세계는 중국의 ‘코로나 개방’이 가져올 기회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중국이 코로나 규제 대폭 완화를 추진하는 지금이 중국 주식을 저가에 매수할 최고 기회”라고 했다. 7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LG생활건강과 한국화장품, 한국콜마 등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화장품 회사들의 주가가 올랐다. 베이징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탈(脫)중국을 고려했던 미국·유럽 등 외국 기업들이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대도시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위드 코로나’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베이징의 식당가와 쇼핑몰은 오랜만에 손님들로 붐볐다.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식당에서는 6일 ‘식당 내 취식 금지’가 해제되자 ‘중요 통지, 우리 드디어 테이블 손님 받아요’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건물 외벽에 붙였다. 궈마오 지하상가의 식당들은 손님이 몰려들자 오후 7시부터 ‘식재료가 떨어졌다’면서 영업을 일찍 마쳤다. 개점을 미뤄왔던 한 한식당은 7일 문을 열었다. 중국 전역의 영화관 개관율은 50% 수준(5일 기준)으로 올라왔고, 광둥 80%, 상하이는 70%를 넘어섰다. 주요 중국 관광지의 항공권 예약은 지난달의 10배로 늘었다.
베이징의 한 명문 대학은 지난달 29일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자 도서관·자습실·운동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6일 밤부터 모든 시설 이용 제한을 풀었다. 후난성 장자제 쌍즈현은 “춘제는 집에서 보내야 한다”며 “출향인들이 춘제 때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도 늘고 있다. 위챗 단톡방에는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해열제와 기침약은 약국마다 품귀 현상을 겪었다.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 몇 명이 대표로 줄을 서서 감기약을 사재기한 다음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관영 환구시보는 한 약품 판매 사이트에서 감기약, 소염제, 해열제 판매량이 최근 20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 백신 접종률 높이기에 나섰다. 홍콩 명보는 “지난 이틀간 중국 회사 네 곳이 자체 개발한 백신이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중국이 ‘단계적 일상 회복’ 전환에 나서면서 하락세였던 생산·소비·투자·수출입은 빠르게 회복될 전망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7% 줄어 2020년 2월 이후 최악이고, 중국의 올해 1~3분기 경제성장률은 3%대에 그쳐 목표치(5.5%)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와 함께 이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 6일 새 지도부 출범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주재한 회의에서 내년 경제 운용 기조를 ‘안정 우선, 안정 속 성장 추구[穩字當頭 穩中求進]’로 설정했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됐던 봉쇄 중심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탈피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중국의 회사들은 방역이 완화되자 생산성 높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이징 시얼치(西二旗)의 한 인터넷 대기업 본사는 이날 올해 들어 처음으로 사무실 자리가 직원들로 가득 찼다. 전날 밤 회사 측에서 ‘전원 사무실로 출근해 근무할 것을 권고한다’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직원 장모(28)씨는 “원래 수용 인원의 50% 미만만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베이징의 또 다른 민영 기업에서는 열이 나는 직원이 병원에 가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사 임원은 “다 같이 코로나에 걸리고 털어버리자”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 공장을 비롯해 중국 각지 공장들은 ‘폐쇄 루프’ 방식에서 벗어나 정상 가동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중국 증권시장에는 벌써 국내외 투자회사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레저, 요식업, 엔터테인먼트, 항공 등 분야의 주식 종목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상하이증권보는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UBS,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내년 중국 증시를 낙관하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