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아랍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앞줄 왼쪽부터) 중국 국가주석,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아흐메드 아불 가이트 아랍연맹 사무총장. 시 주석은 최근 아랍 국가들과 협력 관계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아랍 21국(國) 정상들을 한꺼번에 만나 중국과 아랍권의 전면 협력 방안을 담은 ‘리야드 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처음으로 열린 중국·아랍 정상회의에는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6국(사우디·UAE·카타르·쿠웨이트·오만·바레인)과 지중해 동쪽 레반트 지역 국가(이라크·레바논·요르단),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모로코, 튀니지 등을 포함하는 아랍연맹(AL) 소속 국가들이 참여했다. 사실상 아랍권 전체가 시 주석과 만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회의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과 아랍 세계 사이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수준의 외교 행사”라면서 “중·아랍 관계사(史)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중국은 이번에 처음 개최한 중국·아랍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랍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넘어 ‘중국·아랍 운명공동체’ 구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마음이 맞는(like-minded)’ 민주주의 국가들과 반중 전선을 강화하자 중국은 아랍과 경제·문화·외교를 망라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맞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7~10일 사우디를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은 9일 중국·아랍 정상회의에 이어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도 잇달아 참석했다. 이번 사우디 방문 기간에 시 주석이 양자 정상회담을 가진 중동 국가는 최소 17국이다. 사우디와는 2년에 한 번씩 정상회담을 열기로도 합의했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아랍 정상회의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 평화 안정과 관련된 문제로 팔레스타인 국민이 겪은 불공정한 역사가 계속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팔레스타인의) 독립 건국 요구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 지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아랍권의 환심을 산 것이다. “(서방의) 이슬람 공포증에 반대한다”고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7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도착해 사우디 지도부의 환영을 받고 있다. 시 주석은 사우디 방문 기간 동안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 등에 참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시 주석은 아랍 국가들과 만남에서 특히 언어·문화 교류를 강조했다. 중국·아랍 정상회의에서는 중국과 중동 간 8가지 협력 분야를 제시하며 ‘문명 간 대화’ ‘청년 인재 양성’ 등 문화 관련 협력을 강조했다. 같은 날 중국·GCC 정상회의 연설에서는 ‘언어·문화 협력’을 에너지·금융·과학기술·항공우주 분야의 공동 대응과 함께 언급했다. 중국의 국영 CCTV 메인뉴스는 사우디의 중국어 교육 실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시 주석은 사우디의 ‘리야드신문’에 8일 게재한 기고문에서는 “중국과 사우디는 평등하게 서로를 대하는 좋은 친구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좋은 파트너이며, 함께 고난을 겪는 좋은 형제”라고 했다. 쿠바 등 공산주의 국가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는 ‘형제’란 단어까지 사용한 것이다. CCTV는 10일 “시진핑 주석이 사우디 국빈 방문 기간에 성명 발표나 각국 지도자 회담, 연설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파트너[夥伴]’란 표현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랍 국가들은 시 주석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로 화답했다. 중국·아랍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리야드 선언’에서는 “모든 형태의 ‘대만 독립’에 반대하고, 홍콩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며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 아래 국가 안전을 유지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중국과 아랍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경제 협력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 기간 동안 중국과 아랍 국가들은 원유 위안화 결제, 금융, 우주·과학기술, 에너지 등 분야에서 협력 강화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