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AP연합뉴스

“중국 경제의 큰 배는 승풍파랑(乘風破浪)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난 15~1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中央經濟工作會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년 중국 경제와 관련, ‘승풍파랑’을 언급했다. 원대한 뜻을 위해 바람 타고 거친 파도를 헤쳐간다는 의미로, 내년부터 중국 경제가 성장에 초점을 맞출 것을 시사한 발언이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중국 최고 지도부가 다음해 중국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결정하는 자리다. 시진핑은 개회 연설에서 “내년 경제 운용은 전반적으로 반등할 전망”이라며 “(경제) 발전은 당의 첫째 의무이고, 집권당으로서 경제 지도를 반드시 강화하고 경제 업무를 빈틈없이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은 회의에서 중국의 ‘빅테크 때리기’와 ‘국진민퇴(國進民退·국영기업을 육성하고 민영기업 영역은 축소)’ 기조를 180도 바꾸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나는 민영기업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며 “20차 당대회 보고에 담긴 민영 경제 발전 촉진 정책은 장기적인 것이고 임시방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회의 전문에는 최근 2년간 연속 거론했던 ‘반(反)독점과 부당 경쟁’이란 표현과 지난해부터 강조해 온 시진핑의 핵심 가치 ‘공동부유’(共同富裕·모두가 잘사는 사회)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진핑 집권 10년 동안 중국 내 부동산-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중심으로 투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GDP 성장률은 계속 떨어졌다. 과도한 자원 낭비와 부채 양산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자료=국제통화기금(IMF)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올해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3년 연속 ‘안정[穩]’을 언급했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달랐다. 관영 신화통신이 공개한 회의 발표 전문을 보면, 작년에는 ‘거시 경제 안정 책임’을 강조한 반면 올해는 “거시 경제 개입을 확대[加大]하고, 각종 정책 협력을 강화[加强]하라”고 했다. 회의는 또 “내년 경제 업무는 발전에 대한 믿음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국내 수요 확대에 주력하고 소비 회복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탈피해 경제 발전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과거 등장했던 ‘(코로나) 외부 유입, 내부 증가 방지(2020·2021년)’ ‘엄방사수(嚴防死守·2020년)’ 같은 표현이 사라지고 ‘코로나 유행을 순조롭게 넘기고, 평온한 전환과 사회 질서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구가 등장했다. ‘제로 코로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회의에서 “코로나 방역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시기에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을 잘 조정하는 것이 최근 몇 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 / AP 연합뉴스

규제와 단속의 타깃이었던 빅테크·부동산 회사들은 경제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플랫폼 기업들이 (경제) 발전을 이끌고, 일자리를 창조하고, 국제 경쟁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회의 전문에 담겼다. 지난해 회의에서 나왔던 ‘자본의 부정적 영향을 통제한다’ ‘자본의 야만적 확장을 억제한다’ 등 문구는 사라졌다. 2020년 10월부터 사정 칼날을 들이댔던 알리바바·텐센트·디디추싱 등 빅테크들을 다시 품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년간 ‘빅테크 때리기’의 끝이 오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라고 했다. 회의에서는 국영·민영기업의 평등한 대우, 민영기업 이익 보호, 외국인 투자자 우려 해소, 해외 자본 적극 유치, 당·정부 간부들의 기업 지원도 강조했다.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관련 기업들에 대한 지원도 이례적으로 약속했다. 회의 전문에 ‘부동산 시장의 평온 발전을 보장한다’ ‘우수 선진 부동산 기업들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막거나 해소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대형쇼핑몰은 다시 열었는데 - 중국 베이징 시민들이 지난 3일 정상 영업에 들어간 쇼핑몰을 찾아 매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재정·화폐 정책에서도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과거 회의에서는 지방정부 음성 채무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지방정부 채무 리스크를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화폐 정책은 합리적으로(2020년), 적당히(2021년) 실시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강력하게 실시하겠다’는 기조로 바뀌었다. 류궈창 인민은행 부총재는 이날 베이징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내년) 통화정책의 규모는 올해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식량 및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회의에서는 중대한 위험을 효과적으로 예방해 경제를 전반적으로 호전시키도록 추동할 것이라고 했다. 중대한 위험 예방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잡한 상황에서 식량·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회의에서는 농촌 관련 정책에서 대규모 식량 생산 운동에 돌입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경제가 성장 기조로 전환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던 양안(중국 본토와 대만) 관계는 경제·인적 교류 확대를 통해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중국은 올해 20대 당대회에서 “조국 완전 통일 실현”을 외치고 대만 해협에서 군사 훈련을 잇달아 하면서 대만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만 외곽 섬과 중국 푸젠성을 잇는 페리 운항이 다음 달 춘제(중국 설) 전 2년여 만에 재개될 수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페리 노선은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 2월 이후 중단됐다. 14일 주프랑스 중국 대사관에 따르면 루사예(盧沙野) 중국대사는 “(대만 통일) 기한은 딱히 없고, 우리의 입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만 독립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대 당대회 당시만 해도 중국은 “조국 완전 통일을 실현한다”고 선언했는데, 유명 외교관이 갑자기 ‘현상 유지도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이 경제 성장에 집중하기 위해 한동안 대만 리스크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