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수술 후 병원에서 회복 중이었지만 딸을 보기 위해 휠체어를 끌고 왔습니다.”
8일 오전 11시 40분,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의 입국장. 23년째 베이징대 국제관계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존 게이츠는 휠체어에 앉아 딸을 기다렸다. 얼마 전 오른쪽 무릎 수술을 마치고 이날 퇴원한 그의 손목에는 미처 뜯지 못한 환자 정보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의 발밑에 놓인 가방 속에는 아내 안나 리사가 딸에게 주기 위해 직접 구워 온 초콜릿칩 쿠키가 들어 있었다. 그가 딸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약 3년만이다. 중국이 2020년부터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며 해외 입국자에 대해 최소 8일, 최장 4주의 시설 격리 조치를 내린 탓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고 있는 딸이 중국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격리가 해제되면서 딸은 홍콩을 거쳐 베이징에 오게 됐다.
게이츠의 딸은 커다란 트렁크 2개를 실은 공항 카트를 끌고 입국장에 등장했다. 23살의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으로, 상의에는 ‘베이징대학’이란 한자가 적혀 있었다. 게이츠는 딸을 보자마자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지팡이를 짚고 섰다. 딸은 울음을 터트리며 달려와 안겼다. 리사도 부녀를 껴안았다. 게이츠는 “지난 3년 동안 매년 베이징에서 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면서 “지난달 11일에는 코로나에 걸려 고통스러웠는데 한 달 뒤인 오늘은 최고의 기쁨을 맛보는 중”이라고 했다. 리사는 “딸이 사랑하는 반려견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또 한번 눈물 바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해외 입국자 시설 격리를 폐지한 8일,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곳곳에서는 눈물의 상봉 장면이 연출됐다. 베이징 차오양구에 사는 한 여성은 시어머니와 5살 딸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남편을 맞이했다. 그는 “격리 해제 소식이 들리자마자 남편에게 춘제(중국 설)에 꼭 집에 와달라고 했다”면서 “몇 년은 못 볼 각오로 남편을 해외로 보냈는데 6개월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50대 장모씨는 “홍콩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3년만에 집에 돌아오게 됐다”면서 “원래 1일 베이징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예약했는데 격리 해제 혜택을 누리기 위해 8일로 도착일을 바꿨다”고 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 남성은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를 1년만에 만났다”고 했다.
이날 공항에 도착한 해외 입국자들의 입국 심사는 빠르게 이뤄졌다. 에티오피아에서 홍콩을 경유해 베이징에 온 야오모씨는 “코로나 이전과 비슷한 방식의 검역 절차를 거쳐 30분만에 입국 수속을 마쳤다”고 했다. 직전까지 중국에서는 해외 입국자가 공항에 도착하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실시하고, 별도의 통로를 이용해 격리 시설로 이송했다. 서우두국제공항 입국장 직원은 “국제선 입국장이 이렇게 붐비는 것은 오랜만”이라면서 “지금까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마카오에서 들어오는 승객뿐이었다”고 했다. 신화사는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은 방역요원과 이별을 선언했다”고 했다. 신징보는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에 오전 0시 16분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했다”면서 “격리 면제 혜택을 받은 첫 국제선 항공편”이라고 했다.
중국이 국경 빗장을 풀면서 올해 중국 전역에서는 국제 행사가 잇따라 열릴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7일 중국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博鰲)포럼이 3월 양회(兩會) 이후 하이난에서 열린다고 전했다. 작년 개최 예정이었다가 연기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9월 23일∼10월 8일 개최된다. 2021년 4월 개최 예정이었던 청두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도 7월 개막할 예정이다.
그러나 중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단기간에 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국,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에서 중국을 방문했던 여행객에 대한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있고, 중국에서 국제 항공편 증편이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독일 외교부는 7일 “불필요한 중국 여행은 삼갈 것을 권장하고 있다”며 “코로나 감염이 최고조에 달한 데다 과부하가 걸린 중국 보건 체계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