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 대이동’을 뜻하는 ‘춘윈’이 시작된 지난 1월 7일, 중국 베이징남역의 개찰구로 열차를 탑승하려는 승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자, 신분증 스캔하시고 얼굴도 스캔하세요.”

지난 1월 10일 중국 베이징역. 역사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향해 직원들이 같은 말을 쉼없이 반복했다. 기차를 타지 않아도 입구를 통과하려면 이곳에서 신분증을 스캔하고 얼굴을 카메라에 찍어 본인 확인을 거쳐야 했다. 역사에 들어가서는 검색대에 짐가방을 통과시켰다. 실명인증에 보안검색까지, 마치 국제선을 타러 공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물 바깥에는 춘절(春節·음력 설) 기간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매표소로 모였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하얼빈, 창춘 등지로 가는 고속열차 표는 춘절 기간은 물론이고 일주일 전부터 일찌감치 매진됐다. 베이징의 다른 역인 베이징서역과 베이징남역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분증, 얼굴 스캔해야…

매표소에서는 직원 다섯 명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민원 처리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보통은 인터넷으로 예약과 취소, 발권 등을 다 처리할 수 있지만 몇 년 만에 찾아온 ‘코로나 없는’ 명절에 상황이 달라졌다.

“10시간 이상 걸리는 구간이라 피곤할 것 같다”며 이등석 티켓을 일등석으로 바꿔 달라는 사람, 춘절 기간 이미 매진됐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매표소를 찾은 이들, 온라인으로 티켓을 사는 법을 모른다는 노령층 등으로 창구 업무는 거의 마비 수준이었다.

나도 여권을 들고 한참을 기다려 기차역 시스템에 본인 등록 절차를 마쳤다. 중국에서는 기차표를 실명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외국인의 경우 정책이 더 까다로워 기차역에 직접 가서 여권을 보여주는 실명 인증을 거치고 나서야 온라인에서 표를 살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 바로 앞에 서있던 일행은 북한 가족이었다. 성인표를 어린이용으로 잘못 구매해 쩔쩔매고 있었는데, 사정을 들은 매표소 직원은 “그냥 일단 타시고 차액을 현장에서 정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역으로 들어가려는 시민들의 손엔 짐가방 외에도 빨간색으로 포장된 명절 선물세트가 들려 있었다. 오랜만의 고향방문 이어서인지 ‘베이징역’ 글자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등 표정들이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춘절을 한 주 앞두고 중국 미디어들도 ‘민족 대이동’을 예고하며 명절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춘절을 전후로 전국적 인구 이동이 예상되는 ‘춘윈(春運)’ 기간은 1월 7일부터 2월 15일까지로, 중국 교통운수부는 이 기간 동안 약 20억9500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CCTV에서는 이미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베이징밖으로 나가는 고속도로와 기차역을 보여주며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려는 여객 수송량이 증가하고 있고, 조만간 예전과 같은 민족 대이동이 시작될 것 같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역별 전문가 인터뷰에선 “이미 도시 주민 70~80%가 감염돼 항체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도시 간 이동에 큰 위험은 없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각 지역별 소수민족의 명절 풍습을 소개하며 절구에 찹쌀을 찧고, 온 가족이 모여 전통 음식을 해먹는 모습을 내보내는 등 고향 방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이어졌다. 1년 전 위드코로나 때 코로나 대유행을 우려해 명절 기간 동안 친지 방문과 성묘 등을 가급적 자제할 것을 독려해온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베이징의 한 화장장 굴뚝에서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photo 뉴시스

춘절 분위기 속 화장터 대란도 여전

스마트폰 세상에서는 정반대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관영 매체가 대화합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안 웨이보와 같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코로나와 관련된 시민들의 제보가 쏟아졌다. 시신을 화장할 곳이 부족해 유족들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시신을 화장하거나, 시신이 비닐에 덮여 쌓여 있는 화장터 장면 등이 올라왔다가 몇 시간 뒤 지워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하는 숫자는 하루 5명 미만이다. 하지만 내가 베이징에 온 지 한 달도 안 돼 벌써 주변 지인의 부모님 한 분이 코로나로 숨졌다. 또 다른 한 명은 코로나 양성이 나온 뒤 극심한 폐렴증상으로 2주 넘게 의식이 없다. 중국 정부가 자세한 수치를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도 노령 희생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지인은 가족 절반이 한국에 있고 양국 입국 격리 등 제한조치가 완전히 해제되지 않은 상태여서 발을 동동 굴렀다. 처음 화장터에 문의했을 때는 ‘일주일 이상 기다리라’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슬픔을 느낄 새가 없었다. 베이징에 있는 모든 관시(關係)를 동원해 몇 시간 뒤 곧바로 화장터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분초를 다투며 벌어진 일이었고 주변에 부고를 전달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지인은 이날 장례 의식 없이 화장터에 동행한 세 명의 친구와 고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중국은 인구 이동에 대한 방역 통제를 전면 해제하며 본격적으로 국경을 연 상황이다. 오랜만에 개방감을 맛본 사람들이 이미 고향으로, 휴양지로 떠나는 바람에 공장이나 식당 등이 문을 닫았다는 얘기도 적잖이 들린다.

이로 인한 도시 간 교차감염과 국내외 변종 감염 등의 변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인들은 어차피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자는 태도 같다. 중국 정부도 중국인들의 입국 제한조치를 취한 한국, 일본 등에 단기비자 발급 중단 등의 불이익을 주는 등 민심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그 분수령과 시험대가 이번 춘절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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