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원색적인 비판을 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고 했고,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박진 외교부 장관의 대만 문제 관련 발언을 비판하며 ‘말참견을 불허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부용치훼(不容置喙)’를 사용했다. 한국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자 중국과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한국 압박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7일(현지시각) “러시아에 대한 수출 금지 품목을 확대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deeply disappointed)”고 밝혔다. 그는 이날 공식 논평을 통해 “이번 결정은 의심의 여지 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반(反) 러시아 정책을 추종한 것”이라며 “이미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국 협력을 명백히 훼손하고, 한반도 안정을 위한 협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4일 유럽연합(EU)과 주요 7국(G7)이 발표한 대(對)러 10차 제재에 공조하기 위해 정부 허가가 있어야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팔 수 있는 ‘수출 통제 품목’을 기존 57개에서 798개로 확대했다. 공작기계와 베어링, 열교환기, 석유·가스 정제 장비, 스테인리스와 특수 철강 제품 등으로, 무기 제조 및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중 러시아가 영향받는 품목은 총 741개”라고 밝혔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번 조치로 한국이 러시아에 대해 독립적 정책을 실행할 능력이 제한돼 있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도 평했다.
마오닝 대변인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박진 장관의 대만 관련 발언을 비판하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다른 사람이 말 참견[置喙]하는 것을 불허[不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반도(半島)의 평화 안정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격히 지키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부용치훼’는 청나라 포송령의 소설에 등장하는 말로 상대방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국이 문제 삼은 박 장관의 발언은 지난 22일 CNN 인터뷰에 나온 것이다. 박 장관은 대만 문제와 관련 “한국은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현 상태 변경에 반대한다”며 “우리는 대만 해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강조해 표현한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대만 관련 발언이 대만해협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었다고 해석하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