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양회(兩會·전인대와 정협)에서 공산당의 권한이 더 커지고 정부의 기능은 축소되는 ‘당강정약(黨强政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기에는 당(黨) 최고 지도자의 명령인 ‘홍두문건(紅頭文件)’에 의존해 국가를 통치했지만, 덩샤오핑 집권 시기인 1986년부터 당과 정부의 직능 분리를 추진해 제도적으로나마 국무원(정부)이 당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이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당·정 조직 개혁이 이뤄지며 당이 정부를 대신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올해 양회에서는 흩어진 국무원 내 감독·규제 권한을 일원화한 조직을 만들고, 그 위에 상부 조직으로 당 위원회를 개설해 통제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중국 정치에 정통한 베이징의 비영리기구 관계자는 “2018년 이전에는 정부 부처들이 당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 싸우고 경쟁했는데, 이제는 당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고 했다. 국무원은 “중앙 국가 기관의 각 부문 인원 편제를 일괄적으로 5% 비율에 맞춰 감축할 것”이라고 밝혀 정부 감축 규모는 1998년 이후 최대가 될 전망이다.
7일 중국 국무원이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제출한 ‘국무원 기구개혁 방안’에는 과학기술·금융 등 주요 분야에서 당의 정부 대체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이날 샤오제 국무원 비서장(국무위원)은 전인대 회의에서 개혁 방안을 설명하며 “과학기술 사업에 대한 당 중앙의 집중통일영도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될 것”이라고 했다. 국무원 부처인 과학기술부 위에 당 조직을 새로 만들어 시진핑이 직접 과학기술 분야를 관할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과학기술부는 향후 당 영도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번잡한 기능을 빼는 감부(減負·과한 부담을 줄인다)에 들어갈 예정이다. 과기부의 각종 기능을 농업농촌부·국가위건위 등 타 부처에 넘기고, 과학기술 중대 프로젝트 관리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금융 분야에서는 국무원 내 분산됐던 금융 관리·감독 기능을 한 곳에 몰아주고, 향후 당에서 이를 관할할 조직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혁 방안에 따르면 국무원 직속기구로 신설되는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은 증권업을 제외한 금융 소비자·기업(기존 인민은행 관할)·투자자(기존 정감회 관할)·채권과 주식(기존 발개위 관할)의 감독 관리 책임을 한곳에 모아놓은 곳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방 각지에 분행(分行·지점)을 내고 톱다운(top down·하향식) 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다. 인민은행은 기존에는 전국을 9개 지역으로 나눠 분행을 내고 관리했는데, 앞으론 31개 성·시·자치구에 각각 분행을 내게 된다.
정보 통제를 위해 데이터 저장·관리 업무를 맡는 국가데이터국도 신설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과 공업정보화부, 발개위 등이 맡는 데이터 통제 업무를 한곳으로 모은 최고 규제 기관이 설립되는 것”이라고 했다. 양회 개막 전에 홍콩 명보 등에서 보도한 당 중앙내무위원회의 신설 가능성도 주목 받고 있다. 새로운 당 기구를 만들어 국무원의 치안(공안부), 정보(국가안전부) 등 업무를 이관할 것이란 전망이다. 양회를 거치지 않고 당 내부 절차를 통해 이 같은 기구를 신설하고, 정부 부처와 별도로 운영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5일 전인대에서 심의 통과한 ‘중화인민공화국 입법법’ 개정안에서는 ‘공산당 영도’가 ‘헌법 준수’보다 먼저 등장했다. 입법 원칙을 담은 이 법안에서 ‘당정 분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의법치국’이 과거보다 후순위로 명시된 것이다. 개정안에는 시진핑 사상 등 키워드도 새로 추가됐다. 탕런우 베이징사범대학 정부관리학원 교수는 홍콩 원후이보에 “중국 국무원 조직 개혁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고, 향후 당·정 연동 작업과 지방 기구 개혁 등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과거 양회 일정을 고려하면, 3월 중·하순에 중국의 조직 개혁 방안 전문이 공개되고 4월 초나 중순에 시진핑이 개혁 방안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