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 중재로 손잡으면서 중동 정세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진 사우디와,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은 지난 10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단절된 외교 관계를 7년 만에 되살리기로 합의했다. 합의는 지난 6~10일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사우디의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국가안보보좌관,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이 참여해 이뤄졌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중국, 사우디, 이란 3국이 외교 방식으로 (사우디와 이란의)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고, 사우디와 이란은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로 동의했다”고 했다.

11일(현지 시각) 이란 현지 신문 1면엔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왼쪽부터)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이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이 실렸다./로이터 연합뉴스

중동 국가들은 사우디·이란의 관계 정상화가 지역 정세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며 일제히 환영했다. 사우디·이란 단교 이후 이란과 거리를 뒀던 아랍에미리트(UAE)의 압둘라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외교장관은 “안정과 번영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고, 이라크는 외무부 성명을 통해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고 했다.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트위터에서 “모두를 위한 ‘윈윈’”이라고 했고, 이집트 외무부는 “이번 합의가 역내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합의는 시리아·예멘 내전의 긴장을 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이란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사우디는 정부에 맞서는 반군을 지지해왔는데 향후 양측이 협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예멘 내전은 종식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우디는 예멘 정부군을, 이란은 시아파 계열인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데 최근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AFP는 “최근 몇 주 동안 후티 반군과 사우디 간에 회담이 진행되고 있고, 사우디가 일부 전투에서 철수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11일 중국 외교부는 사우디·이란이 베이징에서 외교 관계 복원을 발표한 데 대해 “중국은 중동 안전·안정의 촉진자, 발전·번영의 협력자가 되고 싶다”면서 ‘중재자’ 역할을 강화할 것을 시사했다. 중국은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는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번 중재로 중요한 외교적 승리를 얻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너선 풀턴 박사는 AFP에 “이번 합의는 중국이 역내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면서 “중동에서 미국의 우위에 도전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 아랍걸프국가연구소(AGSI)의 후세인 이비시 박사는 “사우디와 이란의 합의는 중국이 중동 외교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라며 “중국이 미국·유럽만이 가능하다고 여긴 (외교) 영역에 발을 들인 것으로, 미국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중국이 사우디·이란 간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데에 불만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속 가능하다면 환영한다”는 발표로 중동 지역의 긴장 완화는 지지한다면서도, 중국이 중재한 합의의 가치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이란이 합의 내용을 지킬지는 정말 두고 봐야 할 일”이라면서 “우리가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발상은 단호히 반박한다”고 했다. 미국이 중동 지역 안정을 위해 역할을 해왔으며 사우디와 협력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지만, 중국의 위상이 강해지는 데에 당황해하는 분위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