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 오후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전통적인 ‘균형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평가와 함께, “제3의 길을 명분 삼아 경제적 실익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은 “지난 3년간 국제 형세는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지만, 양측의 노력으로 중국·프랑스 관계는 안정적으로 발전했다”면서 “양국은 독립·자주 전통이 있는 전통적인 대국으로서 세계 다극화를 결연히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양국 정상은 중국·유럽 관계 개선 방안과 양국 무역 증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진핑은 유럽의 전략적 자주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조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마크롱은 전날 주중 프랑스 대사관에서 자국 교민들과 만나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중국과 상업적 관계를 계속 적극적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은 이번 방문에서 에어버스, 알스톰, LVMH, EDF 등 자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고위 전·현직 관료, 문화 예술 종사자 60여명을 대동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친중파인 장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와 리마 압둘 말락 문화부 장관도 함께 왔다.
라파랭은 중국으로부터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불린다. 중국계 여배우 공리도 프랑스 국적 음악가인 남편과 함께 수행단에 포함됐다. 마크롱의 방중 기간에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는 대규모 항공기 판매 거래를 중국 측과 협상할 예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마크롱은 이날 베이징에서 시진핑과 정상회담, 공식 만찬을 갖고 이튿날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시로 자리를 옮겨 시진핑과 재차 회동할 예정이다. 비공식 만찬도 예정돼 있다. 이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포함하는 3자 정상회담도 진행됐다. EU 수장인 폰데어라이엔이 마크롱과 함께 이번 정상회담에 참석한 것은 중국과 지나치게 밀착한다는 유럽 내 비판을 면하기 위한 마크롱의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진핑이 수도 베이징이 아닌 광저우에서 또 한번 마크롱과 만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수출 기지인 광둥성은 ‘개혁·개방 1번지’로 불리고, 중국의 대(對)프랑스 교역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중국 1인자가 외국 정상을 만나는 것은 ‘중국이 유럽에 문을 열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큰 타격을 입은 유럽 경제는 중국 시장이 필요하고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은 마크롱 대통령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목표”라고 분석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 브리핑에서 “봄기운이 완연한 지금 중국과 유럽은 각 분야에서 신속하고 전면적으로 교류를 전개하고 있다”면서 “양측의 빈번한 왕래는 더 소통하고 교류하려는 강한 희망과 광범위하고 두터운 공동 이익이 존재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전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실익을 강조하는 마크롱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각국이 대중 전략에서 단결됐는지 의문”이라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를 ‘균형자’로 포지셔닝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한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중도 우파 성향 일간지 르피가로는 ‘중국이라는 호랑이 조련에 나선 마크롱’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을 설득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하지만, 서구적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국의 영향력을 세계에 드러내기로 결심한 ‘붉은 황제(시진핑)’은 자신의 궤적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중도 좌파 성향 르몽드는 “최근 홍콩과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시진핑은 (상황이 자연히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현상 변경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마크롱 대통령과 폰테어라이엔의 방중은 중국 당국에 확고한 메시지를 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