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중국의 북한 접경 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에 몰려든 관광객들. 이들 뒤에 보이는 다리가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북중우의교이다. 압록강 건너편으로 신의주 풍경도 보인다./단둥=이벌찬 특파원

“북한 손님을 위한 ‘페라가모 명단’을 만들었습니다. 로고가 잘 보이는 제품을 선호하지요.”

지난 19일 북한 신의주를 마주 보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최고급 백화점 ‘후이차오궈지(滙僑國際)’ 1층 매장.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를 파는 이곳 직원은 “5년 동안 매장을 운영했는데 요즘 들어 북한 손님이 가장 많다. 이들을 별도 응대하는 웨이신(중국판 카카오톡) 단톡방도 최근 여러 개 개설했다”고 했다.

2020년 초 코로나 확산 이후 3년 넘게 닫혀 있던 북·중 국경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무역상들의 움직임이 최근 눈에 띄게 바빠지고 있다. 북한 무역상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면 최소 서너 기관의 상사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 이들이 ‘명품 사재기’에 돌입하면서 단둥 명품 매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현지 상인들은 전했다.

중국 단둥시의 한 백화점 내 페라가모 매장에서 북한 손님들이 선호하는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단둥=이벌찬 특파원

‘북한 고객 선호 제품 명단’엔 2만위안(약 386만원) 넘는 핸드백이 20개 이상 포함돼 있었다. 직원은 매장 입구의 한 검정색 가방을 가리키며 “방금 다녀간 북한 손님이 예약한 제품”이라면서 “로고 문양이 많이 새겨진 남성용 가방과 벨트·구두도 인기”라고 했다.

코로나 이전까지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가 이뤄지고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해 의류,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도시였다. 2020년 1월 코로나 방역 및 ‘자력 갱생(중국 등 해외 의존도 낮추기)’을 이유로 북한이 북·중 국경을 닫으며 교류는 중단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북한 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면서 북한이 국경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8일 단둥의 압록강 단교 인근 대로변의 북한 기념품점에서 제조일이 '2023년 1월'로 찍힌 북한산 인삼 절편을 팔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3년 이상 닫힌 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최근 재개방 조짐을 보이고 있다./단둥=이벌찬 특파원

단둥에선 북한 상품이 이미 중국으로 흘러들어 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단둥 북중우의교 앞 상점에는 제조일이 ‘2023년 1월’인 북한산 맥주 ‘대동강’과 인삼 절편 등이 즐비했다. 가게 주인은 “화교(북한 거주 중국 국적자)가 직접 가져온 물건이다. 지난달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귀한 것들”이라고 했다. 단둥 소식통은 “북한의 가장 큰 돈줄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중국”이라고 했다.

북·중 국경 개방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운행이 중단됐던 화물 열차가 지난해 9월 이후 매주 한 번꼴로 단둥~신의주를 오가기 시작했고, 지난 1월엔 북한 나진과 중국 훈춘을 연결하는 화물 트럭 운행이 재개됐다. 지난달 27일에는 왕야쥔 신임 주북 중국 대사가 북한으로 넘어가 정식으로 업무를 개시했다. 단둥 소식통은 “평양과 직통할 수 있는 단둥~신의주 육로 개방 및 이 구간의 기차 운행이 확대되는 국경 전면 개방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는 7~8월쯤을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