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면 엉덩이, 뒤돌아 보면 머리가 있을 뿐이다. 이러려고 만리장성에 왔는가.”
지난 2일 베이징 옌칭구의 만리장성에서 만난 쉬모(30)씨는 “(중국 남부) 광시성의 가족들이 모처럼 ‘수도 관광’을 왔건만, 사람밖에 안 보인다”라고 했다. 이날 만리장성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오후 베이징의 대표적 관광지인 자금성(紫禁城) 앞도 나아가기 힘겨울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2020년 초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방역 없는 노동절 황금 연휴(4월 29일~5월 3일)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수도 관광’을 위해 이곳을 찾은 수만명의 행렬은 점점 더 늘어나는 듯했다.
“쩌우치라이(走起來·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부랑진(不讓進·진입 금지)!” 100m마다 서너명씩 배치된 보안 요원의 고함에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뒤엉킨 자금성 앞은 관광지보다는 시장통에 가까웠다. 주변 식당엔 환영 문구 대신 ‘예약 필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 낮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자 아이스박스를 멘 상인들은 그 인파를 헤집고 2위안(약 400원)짜리 빙과를 팔았다.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은 길가에 앉거나 드러누웠다. 자금성의 입구 격인 우먼(午門)에서 1㎞ 떨어진 톈안먼(천안문) 광장으로 가는 길은 성지순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로 가득했다.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 방역(’제로 코로나’)에 억눌렸던 ‘보복 관광’ 수요가 이번 연휴를 계기로 폭발하면서 연휴 기간 중국 전역의 여행지는 몰려드는 인파로 마비됐다. 중국 당국은 연휴 기간인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철도·도로·수로·항공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관광객만 1억5932만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관광업계는 노동절 연휴 기간에 중국 내 관광객이 2억4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체 인구의 17%에 해당하며,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보다 4% 많다.
주요 관광도시는 몰려드는 관광객을 감당하지 못해 아수라장이 되고 있다. ‘노숙 관광객’까지 생겼다. 지난달 29일 중국의 대표적 명산으로 꼽히는 안후이성 황산(黃山)에선 관광객 수십 명이 화장실 바닥에서 밤을 보냈다. 황산 관리사무소는 “호텔 예약을 하지 못한 이들이 하산을 거부하고 화장실에서 버틴 것”이라고 설명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전국의 훠궈 체인점 ‘하이디라오’는 숙박비를 절약하려는 대학생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됐다. 꼬치구이로 유명한 산둥성 ‘쯔보’는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꼬치 시장 입구를 한때 차단했다. 중국 매체들은 “지난달 30일 하루 동안 18만명이 시장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충칭의 야경 명소 첸쓰먼 대교는 관광객이 몰리자 다리 입구를 막아버렸다. 항저우 서호의 다리인 돤차오엔 사람들이 몰려 인근 공중화장실 앞에 수백m 줄이 늘어섰다. 사막 관광으로 유명한 간쑤성 둔황의 명사산 월야천에는 ‘낙타 신호등’이 등장했다. 밀려드는 관광객을 소화하기 위해 낙타 2400마리가 총동원됐는데, ‘낙타 길’ 정체와 충돌 사고 등을 막기 위해 자동차용 교통 신호등처럼 빨강·녹색 등이 켜지는 막대 형태 신호등을 설치한 것이다.
유명 관광지뿐 아니라 쇼핑몰과 대형 백화점도 사람이 몰렸다. 1일 오전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구의 이케아 매장은 개점 한 시간 전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섰고,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며 경쟁적으로 입장한 탓에 회전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마비됐다.
연휴 기간 상당수 관광객이 제대로 된 관광을 즐기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으면서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2일 점심 톈안먼 광장 인근 골목 곳곳에서는 시멘트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부실한 도시락을 꺼내 먹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샤먼에서 온 정모(55)씨는 “베이징 주요 관광지는 다 예약제라 대부분 들어가지 못한다. 지붕 없는 데서 밥 먹는 수모를 겪으러 수도에 온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