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한국대사관과 중국 관영 언론사가 윤석열 대통령 방미 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지난 4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 측에 “저급한 표현으로 우리 정상을 근거 없이 비난하고, 우리 외교 정책을 치우친 시각으로 폄훼했다”고 항의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이에 환구시보는 8일 항의 서한에 대해 “난폭한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박 사설을 실었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계열사로, 외교 문제에서 중국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속내와 입장을 밝히는 창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대사관의 항의 서한에 대해 “이 같이 선을 넘는 언사는 외교기관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며 “다른 나라 매체의 독립적 보도에 대해 난폭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간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주중한국대사관이 이례적으로 한국 언론에 항의 사실을 공개해 한국에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에 우리도 공개적인 대응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외교에 대한 비난도 서슴치 않았다. 환구시보는 “이번 한국 정부(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미·일 등의 지역 안정 파괴에 영합하고 대만 문제 등 중국의 주권이 걸린 중대 의제에서 여러 차례 잘못된 발언을 하며 중국 내정을 거칠게 간섭했다”면서 “이제는 더 나아가 중국 언론에 화력을 조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외교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그 결과는 중·한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미·일 앞에서 국격을 잃는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 외교 당국이 진정으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이해하고, 중·한관계의 건전하고 성숙한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환구시보의 사설에 대해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우리 정상과 외교 정책에 대한 무리한 비난에 대해 재발 방지를 촉구했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중관계의 상호 의존성과 호혜성, 건강하고 성숙한 발전을 위해서는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상과 외교 정책에 대한 중국 관영매체의 비난 기사들이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앞서 윤 대통령의 방미 전후 발언과 행보에 대해 거칠게 비난했다. 지난달 23일에는 윤 대통령의 방미 전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해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고 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역대 한국 정부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대한 민족적 독립 의식이 가장 결여됐다”고 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30일 “북·중·러의 보복이 한국과 윤 대통령에게 악몽이 될 것”이라고 했고, 지난 4일에는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한 윤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발언에 대해 “강화된 한미동맹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