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언행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온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가 전략적 숨고르기를 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랑 외교’란 늑대처럼 거친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중국의 전략으로, 맹목적 애국 영화 ‘전랑’에서 유래한 용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 돌파를 시도하는 중국 내부에서 기존의 거친 외교를 세련되게 다듬어야 한다는 자성이 나오는 한편, 일각에선 더 교묘하고 덜 적나라한 ‘전랑 외교 시즌2′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랑 외교는 2019년 대만 통일, 소수민족 문제 등 ‘핵심 이익’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라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주문에 따라 본격화했다.
9일 중국 외교가·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7월 주(駐)프랑스 대사에 부임한 루사예(盧沙野)가 이달 중 귀임하고, 그 자리는 천둥(陳棟) 주프랑스 중국대사관 공사가 대사 대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랑 외교의 대표 주자 루사예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주권을 부정하는 발언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루사예의 귀임은 중국 전랑 외교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중국을 비판하는 국가들을 거칠게 비난하는 발언으로 중국에서 스타 외교관으로 주목받은 자오리젠(趙立堅)이 지난 1월 외교부 대변인직을 떠나며 사실상 강등된 데 이어, 이번에 루사예까지 귀임 처분을 받게 되면 ‘전랑 투톱’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는 셈이 된다. 일각에선 루사예가 일단 귀국 업무 보고를 위해 이달 중국에 왔다가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세등등했던 루사예의 발목을 잡은 발언은 지난달 21일 나왔다. 프랑스 방송 TF1 인터뷰에서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옛 소련 국가들의 주권을 구체화한 국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이 국가들은 국제법상 유효한 지위가 없다”고 주장했다. 루사예의 이 발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의 국가 지위를 인정하지 않기에 파문이 컸다. 옛 소련에 속했던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이 루사예의 발언에 즉각 항의했고, 유럽의회 소속 의원 80여 명은 루사예에 대한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 지정을 촉구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중국 외교부는 부랴부랴 “중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중국 외교부의 상부 조직인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는 루사예의 발언을 ‘중대한 외교 사고’로 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외교관들의 게릴라식 ‘막말 전술’이 미국에 맞서는 동양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의 새로운 외교 전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미국의 외교 봉쇄에 맞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국제 사회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데 ‘늑대’ 같은 이미지로는 무리라는 것이다. 중국은 올해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복원을 중재했고, 지난달에는 시진핑 주석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로 나설 것을 시사했다.
중국이 일단 ‘늑대 본성’을 감춘다 해도, 전랑 외교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대변인 시절 거친 언사로 전랑 외교의 원조로 불렸던 친강 외교부장은 최근에도 미국과 밀착하는 일본을 겨냥해 ‘위호작창(爲虎作倀·호랑이 위해 귀신이 된다)’이라며 비판했고,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발언을 겨냥해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불타 죽을 것”이라는 특유의 비난 문구도 발표했다. 중국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외교관들에게 맡겼던 전랑 외교의 창구를 일원화하고, 대외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9년부터 지속된 중국의 전랑 외교 전략 폐기가 아니라, 업그레이드 작업에 돌입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