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에서 연내 탈퇴할 뜻을 미국에 내비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G7(7국) 중 유일한 일대일로 참여국인 이탈리아가 이탈할 경우 올해 10주년을 맞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과 이탈리아는 일대일로 협력으로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며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시진핑 정권의 해외 영향력 확대를 위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는 중국을 동·서남 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아프리카까지 육로(一帶)와 해로(一路)로 잇는 사업으로, 참여국에 도로와 철도를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는 인프라 협력이 핵심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지난 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회의에서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 “이탈리아 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체코 프라하를 방문 중인 멜로니 총리는 10일 기자들에게 “아직 탈퇴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논의는 열려 있다”면서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2019년 3월 G7 국가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 협정을 맺었다. 주세페 콘테 당시 이탈리아 총리는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너지·항만·항공우주 등 분야의 협력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일대일로 참여를 공식화했다. 협정은 5년 단위로 갱신되는데, 이탈리아가 올해 탈퇴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양국 간 합의는 내년에 자동갱신된다.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탈퇴를 고려하는 이유는 예상보다 경제적 이익이 적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외교부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대(對)중국 수출은 2019년 130억유로에서 지난해 160억유로로 소폭 증가했지만, 중국의 대이탈리아 수출은 같은 기간 317억유로에서 575억유로로 급증했다. 대만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도 중국과 지나친 경제 밀착에 제동을 건 이유가 됐다. 이탈리아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제조업은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이 필수적이라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인 대만과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이탈리아는 대만이 밀라노에 설치를 요구한 ‘밀라노·타이베이 사무소’(辦事處·판사처)를 용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소는 비공식 외교 채널이지만, 대사관과 비슷한 기능을 갖는다.
이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탈리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해 미국 등 서방국으로부터 신뢰를 되찾고자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중(反中) 성향으로 알려진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9월 대만중앙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 결정에 대해 “큰 실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이탈리아가 G7 정상회의 개최 이후 중국에 탈퇴를 통보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탈리아의 탈퇴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중국과 이탈리아가 정부 간 일대일로 공동건설 협력 문서에 서명한 이래 양측은 경제·무역, 공업 제조, 청정에너지, 제3자 시장 등 각 분야 협력에서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이어 “중국과 이탈리아는 일대일로 협력의 잠재력을 한층 더 발굴하고 각 영역의 호혜적 협력을 강화해 중국과 이탈리아 관계의 발전 성과가 양국과 양국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일대일로 사업에 힘을 싣고 있고 있다. 올해 일대일로 정상포럼과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등 양대 다자회의를 자국에서 개최한다. 당장 이달 18∼19일 실크로드 발원지인 중국 시안에서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5국이 참여하는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린다. 중국은 이들 국가와 일대일로 협력 확대를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6일에는 친강 외교부장이 파키스탄에서 탈레반 정부가 들어선 아프가니스탄을 일대일로의 주요 프로젝트인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에 참여시키는 합의를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