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압박에 맞서 중·러 밀착이 강화된 가운데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중국이 사용할 수 있게 내줬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가 러시아에 넘어간 곳으로, 중국으로서는 165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사용권을 되찾게 된 것이다.
베이징완보 등 중국 매체들은 15일 항구가 없는 중국 동북의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이 다음달 1일부터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항(港)을 자국 항구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4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2023년 제 44호 공고’에서 “지린성 국내 무역 화물의 국경 간 운송 업무 범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경유 항구’로 신규 추가한다”면서 “동북 노후 공업 기지 진흥 전략을 실현하고, 해외 항구를 이용해 국내 무역 상품의 국경 간 운송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중국 동북 도시들은 기존에 육로로 1000㎞ 떨어진 랴오닝성의 잉커우항이나 다롄항으로 화물을 옮겨 선박을 이용하던 방식을 탈피해 인접한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용하며 운송 시간과 비용을 크게 아끼게 된다. 러시아 국경과 접하고 있는 중국의 훈춘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이어지는 약 200㎞ 길이의 철로와 도로를 갖췄다. 중국 매체 차이신은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극동지역 사이의 공급망 연계 또한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원래 중국 땅이었으나 러시아·중국의 영토분쟁 이후 1858년 아이훈 조약에 따라 러시아 영토로 편입됐다. 러시아는 ‘해변의 작은 어촌’이란 뜻의 ‘해삼위’(海參葳)란 지명을 ‘동방 정복’을 의미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바꿨다. 이후 이곳은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 도시로 자리매김했고,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도 주둔 중이다.
중국은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최대로 이용할 준비를 마쳤다. 15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 시장이 중국 지린성 옌볜 지역과 철로·육로 화물 운송 규모를 확대하는 협의를 체결했다. 지난 11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퍄오양판 중국 총영사가 허쑹 헤이룽장성 상무청의 부청장과 협의를 갖고 두 지역의 교류 심화와 공동 발전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입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항은 북한 나진항의 대안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중 관계에서 중국이 패를 하나 더 갖게 되면서 우위가 강화되는 것이다. 중국은 나진항까지 이어지는 48㎞ 길이의 도로를 건설했지만, 유엔 대북 제재 등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항 이용으로 인한 경제 효과도 크다.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은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데, 물류망이 개선되면 빠른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만난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파격적인 선물을 건넨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가 중국에 선물을 안긴 이유는 우크라이나전으로 국력이 크게 소모된 상황에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었지만, ‘큰손’이었던 서구권이 전쟁 이후 돌아서면서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판매 대금은 현재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자금원이다. 중국은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우크라이나전의 키도 쥐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유럽을 설득해 휴전에 이르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다.
양국은 향후 에너지 협력도 강화할 전망이다. 니콜라이 슐기노프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성명에서 “중국과 천연가스 공급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면서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가스관 신설 추진을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