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산시성 시안에서 18~19일 열린 중국·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는 ‘황제의 스케일’을 선보였다. 황궁을 배경으로 하는 무대에서 각국 정상들을 환영하는 공연을 펼쳤고, 거대한 회의장에서 만났다. 비슷한 시기인 19~21일 열린 G7(7국) 정상회의를 겨냥해 열린 이 행사를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을 모아 세를 과시한 것이다. 중국 언론은 G7 회의의 구체적인 협의 내용보다 중국에 대한 견제 성명을 비판하는 어조의 보도를 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과도한 의전은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 G7 정상회의 참여국 정상들이 일본 전통 료칸(여관)의 소박한 원탁에 둘러앉아 대화하고, 식당에서 붙어 앉아 만찬을 즐기는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면서 “중국이 몸집 부풀리기를 위해 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마련한 의전은 ‘과함’ 그 자체였다. 18일 저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수나라·당나라 황실 정원 터에 조성한 민속 테마파크인 ‘다탕푸룽위안(大唐芙蓉園)’에서 환영 연회를 열었다. 시진핑 내외와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정상 부부가 참석했다. ‘선녀’를 연상케 하는, 당나라 전통 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 영접원들은 용무늬 장식의 등불을 들고 각국 정상들을 따라 다니며 안내했다. 500명의 예술인은 황궁을 연상케 하는 무대에서 대규모 공연을 펼쳤다.
이튿날에 열린 본회의는 축구장 크기의 회의장에서 열렸다. 정상 간 거리가 수십m에 달해, 서로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회의에서 중앙아시아 인프라·자원·무역 개발 등을 위해 약 5조원(260억위안) 규모의 유무상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는 정반대였다. 친목 모임을 연상케 했다. 이날 저녁 7국 정상들은 일본 전통 료칸에 마련된 소박한 원탁에 둘러앉아 식사하고 대화했다. 20일 히로시마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회의 확대세션에선 참여국 정상들이 조별 과제하듯 붙어 앉아 있었다. 이 세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보자 반가운 듯 급하게 달려가는 모습 또한 포착됐다.
두 정상회의의 상반된 분위기는 양측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G7은 민주주의·자본주의 국가들인 반면, 중국과 중앙아시아 5국은 대부분 지도자가 전권을 쥔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한쪽은 유서 깊은 협력의 역사가 있고, 다른 한쪽은 서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다.
중국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난스러운 ‘황제 의전’을 제공해야만 했던 다른 이유도 있다. 중국이 1990년대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수교한 뒤 이들을 따로 불러 대면 정상회의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맹주’ 격인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과의 협력 강화에 미온적이었지만, 우크라이나전 이후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 등에 있어 중국에 오히려 의존하게 되면서 회의가 비로소 성사될 수 있었다. 중국으로서는 어려운 걸음을 한 이들을 귀하게 대접해야 한 상황인 것이다.
이번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는 개막식 성격도 있었다. 6국 정상회의의 정례화가 선언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 5국은 격년으로 정상회의를 열고, 상설 사무국은 중국에 두기로 했다. 다음 정상회의는 2025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린다.
서방국에서 보기엔 다소 낯 뜨거워 보일 수 있는 ‘황제 스케일’ 행사를 중국은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은 20일 저녁 트위터에 중국·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에서 환호하는 시민들과 G7 정상회의 기간 시위 현장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중국 언론은 “중국·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는 당나라 때의 ‘만방내조(萬邦來朝·주변국들이 조공 바치러 중국에 온다)’를 재현한 듯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