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고객의 옷이 더 아름다워지지요.”
중국 베이징에서 가장 주목받는 의상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꾸린(顧林·59)은 지난달 26일 차오양구의 화랑 ‘윈인’에서 가진 인터뷰 내내 “단순한 삶”을 강조했다. 꾸린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의 중국식 의상을 디자인한다. 펑 여사가 작년 11월 G20(20국) 정상회의에서 입은 보라색 꽃 장식 흰색 치파오와, 같은 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착용한 푸른색 드레스 등도 꾸린의 작품이다. 펑 여사가 최근 서구 스타일보다 중국 특색이 강조된 의상을 선호하면서 꾸린의 옷이 더 자주 노출됐다.
중화권을 넘어 전 세계 정계·연예계 인사들이 고객이다. 배우 위안리와 장쯔이, 청룽(성룡) 등 톱스타는 물론 덩샤오핑의 딸,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며느리,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등도 그의 옷을 입는다. 외국 사절들도 그의 의상실을 자주 찾는다. 중국 최대 건설사 소호차이나의 판스이 회장은 과거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함께 그의 의상실을 방문, “이곳이 중국에서 가장 재밌는 곳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옷은 중국 내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중국 입국이 금지된 샤론 스톤이 그의 옷을 구매하려다 포기한 일화도 있다.
그는 인기에 대해 “과장된 전시용 작품이 아니라 입고 싶은 중국식 의상을 만든 덕분”이라면서 “복무 정신(服務精神·서비스 정신), 로 키(low key·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세), 옷에 기쁨을 담고자 하는 마음”을 비결로 꼽았다.
“고위급들은 의상 담당자가 세밀하게 요구 사항을 적은 종이를 가져옵니다. 처음 치수를 잴 때 방문하면 ‘내 옷을 입으면 마음속에 기쁨이 피어날 겁니다’라고 덕담하고, 이후에는 예술 생각 없이 상대만 생각하며 옷을 만들지요.”
그는 “모든 옷은 적은 양을, 천천히 만든다”고도 했다. 기본 스타일이 수천위안(수십만원)에서 시작하고, 자수가 들어가면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꾸린은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지 않았다. “주목받기 싫다”는 이유로 외신 인터뷰도 한 적 없다. 대신 중국식 의상을 한 벌씩 맞춤 제작하는 부티크(의상실) ‘훙펑황(紅鳳凰)’을 베이징 번화가 싼리툰에서 26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이곳엔 그와 함께 20년 이상 일한 베테랑 재단사만 7명이라고 한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베이징진쑹직업고등학교 복장설계과를 졸업했다. 러브콜을 받아 2015년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개인전도 했지만, 국내에서만 활동하기로 선택했다.
그는 “내가 새롭게 해석한 중국식 의상은 ‘다 잘라내고 남은 형태’”라면서 “원래는 ‘거지’를 연상케 하는 구멍 많고 펑퍼짐한 의상이 내 취향이었지만, 개점 초기 꿈속에서 중국식 옷깃이 달린 단순한 디자인의 붉은 비단옷을 보고 노선을 바꿨다”고 했다. 원래 중국 전통 복식은 치렁치렁하고 곳곳이 부풀어오른 듯한 모양인데, 이를 몸에 꼭 맞게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번 본 색(色)은 잊지 않는다”며 “자연에서 본 색채를 정확히 재현한 천을 직접 만들어 쓴다”고도 했다. 중국적인 요소를 발굴하기 위해 오래된 식당의 젓가락·찻잔과 자금성의 문양 등을 수집했다. 외국 고객에 대한 질문에는 “이탈리아인은 자신이 원하는 옷을 알고, 한국인은 옷에 대한 감각이 좋다”고 답했다.
그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옷들은 대부분 은은하고 정제돼 있는 반면, 유화 재료·채묵 등을 섞어 그린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를 발산해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운영하는 화랑 ‘윈인’ 벽면에 걸린 그림들은 무심하게 투명 비닐로 감싸져 있다. 차나 음료 대신 뜨거운 맹물을 주로 마시며 작업한다. 의상실 수입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화랑 운영에도 보태는데,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없어 의상실·화랑·작업실 모두 임차해 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