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가 10일 주중(駐中) 한국 대사를 불러들여 최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를 둘러싼 한국 측 대응에 대해 항의했다. 한국 외교부가 전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동에서 나온 싱 대사의 정부 비난 발언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 다음 날 중국이 한국 대사를 초치하며 반격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중국이 한국 대사를 초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와 만나 한국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싱 대사의 발언을 놓고 한·중이 맞서면서 양국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이다.
11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눙룽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10일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를 만나 “한국은 현재 한·중 관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반성[反思]하고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면서 “중한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을 성실히 준수하라”고 했다. 이어 “싱하이밍 대사의 직무는 한국 각계각층 인사들과 폭넓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이라며 싱 대사와 이 대표의 회동을 두둔했다. 면담은 40분 이상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외교부는 정 대사를 만난 사실을 공개하며 ‘약견(約見·약속하고 만나다)’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사실상 초치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 주중 미·일 대사를 초치했을 때 사용한 단어인 ‘소견(召見·불러서 만나다)’보다 수위는 낮지만, ‘회견(會見)’과 달리 항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A4 용지 5장 분량의 원고를 꺼내 들고 약 15분간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한국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장호진 외교부 제1차관은 지난 9일 싱 대사를 청사로 불러들여 “(싱 대사의 발언이)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 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대사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면서 중국의 거친 ‘전랑(戰狼·전투 늑대) 외교’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외교관들에 대만 등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로 대처하라고 주문하자 일본·프랑스 등에 주재하는 일부 대사들이 앞다퉈 과격한 공개 발언을 하며 외교 분쟁을 유발하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이 미국·일본과 공조를 강화하자 한국에 대한 중국의 공개 항의가 잦아지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굴욕 외교’라는 지적에 대해 10일 “중국 태도가 마땅치는 않다”면서도 “다만 관계를 개선하고 국익을 좀 더 지켜내기 위해 협조할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이에 “주한 중국 대사를 찾아가 굽실거리며 외교 참사를 일으키는 건 우리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내 편만을 위한 쇼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