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뉴스1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가 지난 8일 한미 동맹 외교를 비판하며 ‘잘못된 베팅’ 등 과격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중국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전략의 전형이다. 전랑 외교란 늑대처럼 거친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겠다는 뜻으로 중국의 맹목적 애국 영화 ‘전랑’에서 유래했다. 대만 통일, 소수민족 문제 등 ‘핵심 이익’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라는 2019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주문에 따라 본격화했는데, 일부 대사들의 언사가 점점 과격해지면서 ‘외교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들어 세계 각국의 중국 대사들 간에 ‘과격 발언’ 경쟁이 붙었다. 지난 4월 14일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 대사는 “대만 거주 15만 필리핀 노동자를 진정 걱정한다면 대만 독립을 명백히 반대해야 한다”면서 필리핀의 노동자를 인질로 잡겠다는 투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같은 달 21일엔 루사예 주프랑스 중국 대사가 프랑스 방송 TF1 인터뷰에서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다”면서 “옛 소련 국가들은 국제법상 유효한 지위가 없다”고 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인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이 루사예의 발언에 즉각 항의했고, 유럽의회 소속 의원 80여 명은 루사예에 대한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 지정을 촉구했다. 우장하오 주일 중국 대사는 취임 직후인 4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만 유사시는 곧 일본의 유사시’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대해 비판하며 “일본의 민중이 불길 속으로 끌려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중국 대사들의 과격한 언사의 배경엔 시 주석의 지침도 있지만, ‘조용한 외교’를 펼쳤다간 내부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대변인 시절부터 전랑 외교의 상징으로 꼽혀온 친강 전 주미대사가 지난해 말 외교부장(장관)에 오른 이후, 대사들의 발언은 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한때 전랑외교 대표주자인 자오리젠이 외교부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고 루사예의 발언이 국제적인 문제가 되면서 발언 수위를 낮출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싱 대사의 이번 발언으로 이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중국인들이 중국 대사들의 강경한 발언을 오히려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수년 전부터 외교부에 ‘칼슘 영양제’를 보내는 것이 유행인데, 이는 ‘칼슘을 섭취해 뼈[骨]를 강하게 만들어 배짱[骨氣·골기]을 갖고 다른 나라를 대하라’는 의미다. 중국 외교관들은 “지금도 칼슘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며 “외교관들이 물러터졌다는 비난이 적지 않아 내부 정치를 위해서라도 강경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이면서도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치욕의 역사’를 씻고 싶어하는 중국인의 심리가 전랑 외교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는 셈이다. 특히 중국에서 애국주의 교육을 강도 높게 받은 링링허우(2000년 이후 출생자) 등 젊은 층에서 이 같은 성향을 더욱 짙게 드러낸다.

중국 외교관들의 게릴라식 ‘막말 전술’이 미국의 포위망에 갇힌 중국 외교의 돌파구처럼 여겨진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일이 밀착하며 소외될 때 중국 대사의 강경한 발언이 어쨌든 중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