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을 방문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가 외국 기업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다. 시진핑은 최근 방중(訪中)한 팀 쿡 애플 CEO(3월)·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5월) 등은 만나지 않았다. 중국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방중 시점에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인 게이츠를 특별 대우하며 미·중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14일(현지 시각) 소식통을 인용해 “빌 게이츠가 오는 16일 시 주석을 만날 예정이고, 단독 면담을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게이츠와 시진핑의 만남은 2015년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린 ‘중국판 다보스’ 보아오포럼에서 성사된 이후 8년 만이다. 이날 게이츠는 트위터에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에 왔다”며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과 함께 세계 보건·개발을 위해 노력해온 파트너들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과 게이츠는 공중 보건·빈곤 퇴치 등 글로벌 공익 사업과 에너지 협력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재계 관계자는 최근 본지에 “게이츠와 시 주석은 6월 중순 베이징에서 단독으로 만나 중국의 국제 공익 프로젝트 투자 확대와 재생 에너지 협력 등을 논의하게 될 예정”이라면서 “앞서 중국을 방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리창 총리조차 만나지 못했지만, 게이츠는 시 주석이 직접 만나주는 파격 대우를 받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3월 베이징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한 팀 쿡 애플 CEO는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를 만났고, 5월 베이징·상하이를 찾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딩쉐샹(丁薛祥) 부총리를 만나는 데 그쳤다. 게이츠는 세계 공익 사업을 위해 중국의 자금을 유치하고자 하고, 중국은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원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이 전격 성사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이츠가 설립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는 중국의 주요 관심사인 재생에너지와 탄소 저감, 핵융합 에너지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시진핑이 게이츠를 만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중국이 가장 신뢰하는 미국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중국 재계에서는 “게이츠는 수십 년간 중국과 인연을 맺은 ‘라오펑유’로, 그의 위상은 팀 쿡·머스크와 비교할 수 없이 높다”고 평가한다. 게이츠는 서방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꺼려하던 1992년, 과감하게 중국에 진출했다. 현지에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기 전부터 공을 들인 것이다. MS는 ‘중국의 최고경영자(CEO)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중국 기업 수장들도 대거 양성했다.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의 창업자 장이밍이 대표적인 MS 출신이다.
게이츠는 중국 최고 지도자들과도 인연이 깊다. 2006년에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자택으로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했던 2020년에는 중국 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500만달러(약 64억원)를 기부했다. 당시 시진핑이 빌 게이츠에게 “중국의 코로나 대응을 지지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직접 감사 편지를 써서 전했다. MS와 중국의 특수 관계 덕분에 구글·네이버 등 해외 주요 검색·포털 사이트가 중국에서 차단된 상황에서도 MS의 ‘빙(Bing)’은 열려 있다. 중국은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의 주요 파트너 국가로 꼽힌다.
시진핑이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의 방중 시점에 게이츠를 만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향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미국의 거물을 예우하며 미·중 협력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다는 해석이다. 미 국무부는 14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16일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정찰 풍선 사태·대만 문제 등으로 양국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미 외교사령탑의 방중은 양국 관계 변화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이 중국을 방문해) 미중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기 위한 열린 소통 라인의 중요성을 논의할 것”이라며 “양국 간 우려 사항과 세계 이슈, 초국가적 공동 과제에 대한 잠재적 협력 가능성 역시 의논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