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설화(舌禍)’로 지난해 수교 30년을 갓 넘긴 한·중 관계가 파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8일 싱하이밍 대사와 만찬을 위해 서울 성북동 주한 중국대사관저를 찾았을 때, 싱 대사는 만찬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A4 원고지를 들고 ‘후쿠시마 오염수’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 ‘한·미 군사훈련’ ‘반도체’ 등 자칫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이슈들에 대해 무려 15분간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 양국 간 우호를 위해 파견된 외교관이 주재국 대통령의 ‘정적(政敵)’이랄 수 있는 제1야당 대표를 향해“대단한 정치인”이라고 추켜세우면서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작심 비판하자 대통령실과 여권에서도 격앙된 분위기다.
발언 다음날인 6월 9일,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싱하이밍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외교적 관례에 어긋나고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며 “외교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게 처신하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이에 맞서 중국 외교부도 지난 6월 10일 눙룽(農融) 부장조리(차관보)가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맞초치해 “싱 대사의 한국 각계 인사들과 광범위한 접촉과 교류는 문제가 없다”고 역성을 들고 나선 상태다.
한국 측 차관이 중국대사를 초치하자, 중국 측은 이보다 격이 낮은 차관보(부장조리)를 앞세워 한국대사를 맞초치하는 미묘한 신경전도 엿보인다. 앞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직전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는 대만과 관련한 로이터통신 인터뷰 직후에는 쑨웨이둥(孫衛東) 부부장이 정 대사에 항의한 바 있다.
싱하이밍 설화 이후 여권에서 “싱하이밍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하라(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는 강경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대통령실도 지난 6월 12일 치외법권 등 외교관 지위를 보장하는 ‘빈협약’을 거론하며 싱 대사에 공개 불만을 표출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6월 13일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대통령실에서는 “중국 측의 적절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는 언급까지 밝힌 상태다. 한·중 관계를 고려해 싱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까지 지정하지는 않겠지만, “알아서 교체하라”는 얘기인 셈이다.
대통령실, 사실상 싱하이밍 교체요구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마오쩌둥의 조선어(한국어) 통역 출신으로 초대 주한 중국대사를 지낸 장팅옌(張庭延) 전 대사부터 싱하이밍 현 대사까지 모두 8명의 대사가 한국을 거쳐갔다. 이 중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된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북한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3대 주한대사를 지낸 리빈(李濱) 전 대사는 한국과 지나치게 유착됐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간 후 ‘국가기밀 누설’ 등의 간첩죄로 징역 7년형을 살기도 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싱하이밍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사실상 추방하면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정부 역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맞추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캐나다 정부가 자국의 홍콩계 하원의원을 사찰한 토론토 주재 중국총영사관 자오웨이(趙巍) 영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추방하자, 중국 측은 상하이 주재 캐나다 영사를 맞추방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고등학교(충암고) 동기인 정재호 대사는 지난해 7월 베이징에 부임했으나 지난 4월 24일에야 비로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장을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한 지 불과 2달도 안 돼 추방될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로서도 출범 1년여 만에 한·중 관계를 처음부터 새로 세팅해야 하는 최대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는 한·중 양국 모두에 상당한 외교적 부담이다.
사실 한·중 양국은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관계가 파탄난 직후부터 관계회복을 위해 물밑에서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 결과 한·중 수교 30주년인 지난 2022년 11월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고, 최근에는 한·일·중 정상회의 재개와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까지 양국 당국자들 입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될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한강변의 중식당 ‘동방명주’가 중국의 비밀경찰서란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한국 정부는 양국 관계를 파탄내지 않는다는 대의명분을 위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당시 비밀경찰 총수로 거론된 왕하이쥔(王海軍) 중국재한교민협회 총회장은 식품위생법과 옥외광고물법 위반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데 그쳤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 앞서 미국의 도감청 의혹이 불거졌을 때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싱하이밍, 여야 넘나드는 광폭행보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8일 서울 성북동 중국대사관저 문턱을 넘어선 이후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대개 사적 만찬을 위한 관저 방문을 비공개로 처리해왔던 관례와 달리,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와 싱하이밍 대사의 모두발언을 언론에 생중계로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당 대표 비서실장 천준호 의원, 당 수석대변인 권칠승 의원(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배석했다. 결과적으로 중국 측이 야당 대표와의 만찬 자리를 이용해 한국을 향한 불만을 여과 없이 전달할 수 있는 판만 깔아준 꼴이다.
이재명 대표 역시 싱하이밍 대사가 만찬에 앞서 A4 원고지를 든 채 15분간 한국어로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이어가자 얼굴이 굳어지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15분간의 폭탄발언을 들은 후 “교민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행 단체관광을 재개해달라”는 정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한 전직 외교관은 “관저만찬이라는 것이 편하게 만나는 자리인데 손님을 초청해 놓고 원고지를 보고 무거운 발언을 이어가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며 “그 자리를 이재명 대표가 박차고 나왔다면 오히려 인기가 올라갔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결과적으로는 대선주자까지 지낸 정치인의 사려 깊지 못한 행보가 국장급 외교관에 불과한 싱하이밍 대사를 거물로 만든 셈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홈페이지나 공식 위챗 계정 등을 통해 대사의 활동사항을 상세히 공개한다. 그동안 싱하이밍 대사와 만난 국내 정치권 인사들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여야를 막론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올 들어서는 지난 1월 김영주(민주당)·정우택(국민의힘) 국회부의장이 각각 싱 대사와 만난 것을 필두로 지난 2월에는 오영훈 제주지사(민주당)가 싱 대사와 만났다. 2월에는 명동 중국대사관에서 한·중의원연맹 소속 국회의원 10명이 싱 대사와 단체로 만나기도 했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의원 중에는 한·중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수석부회장인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있던 주호영 의원, 박광온 현 민주당 원내대표 등 3선 이상 중진들이 즐비했다.
싱 대사는 지난 3월 17일에는 국회를 찾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 있는 홍익표 의원(민주당)과 만났고, 3월 23일에는 성북동 대사관저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을 초대해 오는 7월 중국 청두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그 결과 이기흥 회장으로부터 “사상 최대 규모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어 싱 대사는 지난 3월 28일 국민의힘 신임 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대표를 예방했다. 지난 4월 10일에는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필두로 성일종 전 정책위의장 등 국민의힘 의원 8명을 대사관에서 접견했다.
이어 지난 4월 13일에는 의전서열 2위 김진표 국회의장과 만났고, 4월 20일에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한 달 뒤인 지난 5월 19일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만났다. 또 지난 4월 18일에는 김관영 전북지사(민주당)와도 만났고, 지난 5월 12일에는 서울 성북동 대사관저로 오영훈 제주지사와 그 부인을 초대해 부부동반으로 만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강기정 광주시장(민주당)을 시작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동연 경기지사(민주당)를 줄줄이 만나는 광폭행보를 보였다. 특히 여야의 차기 잠룡으로 꼽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동연 지사와는 지난해 12월 13일과 14일, 불과 하루 간격으로 만나는 막강한 섭외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싱하이밍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중의원연맹 창립총회에는 김진표 국회의장 등 무려 5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이날 한·중의원연맹에 가입을 신청한 여야 국회의원은 홍영표 의원(회장) 등 더불어민주당 59명, 김학용 의원(수석 부회장) 등 국민의힘 35명, 심상정 의원 등 정의당 3명을 비롯해 무려 100명에 달했다.
‘원대인 진전’ 방불케 하는 문전성시
자연히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과 성북동 중국대사관저 앞은 문턱을 넘나드는 한국 정치인들의 발길로 구한말 ‘원대인(袁大人) 진전(陣前)’을 방불케 한다는 말도 나온다. 원대인은 임오군란(1882) 직후 조선에 들어와 청일전쟁(1894) 직전까지 ‘감국대신’으로 위세를 떨친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를 지칭한다. ‘원대인 진전’은 위안스카이 진영 앞이란 말로 지금의 명동 중국대사관과 한성화교소학교 일대다.
조선에 입국할 당시 재한화교들의 비조(鼻祖)인 경군 제독 우창칭(吳長慶·오장경) 휘하 막료에 불과했던 위안스카이의 정치적 위상이 커진 것 역시 고종이 단독 접견하는 등 힘을 실어주면서다.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 직후 민비 환궁 때 청군 간부 중 가장 먼저 축하를 보냈고 그 후 민영익 등 민씨 척족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갑신정변(1884) 때는 청군을 조기 투입해 3일 만에 평정하면서 청국의 실권자 북양대신 리홍장(李鴻章)의 눈에 들었고, 청일전쟁 직전까지 조선의 최고실력자로 부상한다. 청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과 함께 청국을 멸망시키고 쑨원의 양보를 받아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에 취임한다. 이후 스스로 ‘중화제국’을 선호하고 황제(홍헌제)에 즉위하는 중국 최고의 ‘대도(大盜)’로 꼽히는 인물이다. 위안스카이가 거느린 처첩만 모두 10명으로 이 중 3명은 조선 여성이었다.
이번 ‘설화’로 싱하이밍 대사는 임오군란 직후 한반도를 무대로 활동한 역대 모든 중국 외교관 가운데 위안스카이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위안스카이는 갑신정변 직후인 1885년 10월부터 청일전쟁 발발 1894년 7월까지 9년간 ‘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대신’이란 직함으로 사실상청국대사 역할을 했다. 조선을 ‘속국’으로 간주한 청국은 ‘외교’라는 말 대신 ‘교섭’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임오군란 직후 조선에 부임한 청국 외교관 천슈탕(陳樹棠·진수당) 이후 한반도에서 활동한 역대 모든 중국 외교관(중화민국도 포함) 중 위안스카이보다 길게 활동한 외교관은 대만 장제스 정권이 1951년부터 1961년까지 한국에 파견한 왕동위안(王東原) 전 주한 중화민국(대만)대사 한 명 정도다.
공교롭게도 싱하이밍 대사 역시 위안스카이의 세력기반인 ‘북양(北洋)군벌’ 아성(牙城)인 톈진(天津) 출신이다. 1964년 톈진에서 태어난 싱하이밍 대사는 1981년 북한 황해도 사리원의 계응상사리원농업대에서 국비유학생으로 조선어(한국어)를 익히고 1986년 중국 외교부에 입부했다. 이후 외교부 아주사(司·국)에 적을 두고 주북한 중국대사관과 주한 중국대사관을 번갈아 오가면서 근무했다. 2003년부터는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참찬(참사관)으로 일했고, 2006년에는 주북한 중국대사관에서 공사참찬(정무공사)으로 근무했다. 2008년에는 다시 주한 중국대사관으로 돌아와 대사관 넘버2인 공사참찬을 지내고, 2011년 본국으로 돌아가 아주사 부사장(부국장)이 됐다.
이후 2015년 주몽골 대사로 부임한 싱하이밍 대사는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0년 추궈홍(邱國洪) 전 대사의 후임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당초 주한 중국대사 자리를 두고 싱하이밍과 함께 물망에 올랐던 사람은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정무공사를 지낸 천하이(陳海) 현 주미얀마 중국대사였다. 1971년생으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과를 졸업하고 1995년 중국 외교부에 입부한 천하이는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근무경험도 풍부해 중국대사행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천하이는 ‘사드 사태’ 와중인 지난 2016년 12월, 중국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 자격으로 방한해 한국 기업인들을 상대로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느냐”는 ‘설화’로 졸지에 기피인물로 낙인찍혔다.
천하이 설화로 중국대사에 발탁
당시 사태 여파로 한직인 주몽골대사로 몽골초원을 떠돌던 싱하이밍은 천하이보다 앞서 주한 중국대사 자리를 꿰찼고 중국 외교부 최고의 ‘한반도통’으로 부상했다. 중국 외교부에서 주몽골대사를 거친 후 주요국 대사로 영전한 사례는 드물지만, 주한대사를 거친 뒤 요직으로 영전한 사례는 제법 된다. 우다웨이(武大偉) 전 주한대사는 주일대사를 거쳐 외교부 부부장(차관), 조선반도(한반도)사무특별대표까지 지냈다. 청융화(程永華) 전 주한대사도 주일대사로 영전했다.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말을 못했던 청융화, 장신썬, 추궈홍 등 전임 대사와 달리, 유창한 한국어로 직접 대외활동을 주도하며 확고한 장악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장악력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대사 부인인 탄위쥔(譚育軍) 여사까지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탄위쥔 여사는 지난 3월 싱하이밍 대사가 과거 한·중 우호의 상징이었던 안재형·자오즈민(焦志敏) 부부를 성북동 중국대사관저로 초대했을 때도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탄위진 여사는 싱하이밍 대사가 지난 5월 울릉도를 찾아 코오롱그룹이 운영 중인 1박에 1000만원이 넘는 최고급 리조트 ‘힐링스테이 코스모스’에 무료 투숙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함께 거명됐다. 코오롱그룹 측은 “이태원 참사 당시 중국인을 포함해 외국인들에게 국내 교통편을 제공했고, 이에 싱하이밍 대사가 고마움을 표시해 답례 차원에서 숙소를 제공한 것”이라며 “대가성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국 사업을 위해 싱하이밍 대사 부부에게 로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부적절한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자 외교가에서는 2020년 2월 한국에 부임해 올해로 임기 3년째를 맞는 싱하이밍 대사의 교체 모멘텀이 생겼다는 안도의 한숨도 나온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역대 주한 중국대사들은 초대 장팅옌 대사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가까이 재임한 것을 제외하면 대개 3~5년 주기로 교체돼왔다. 싱하이밍 대사가 정무공사로 있을 때 주한대사로 있었던 청융화 전 대사는 주일대사로 영전하면서 불과 1년4개월 만에 교체됐다. 싱하이밍 대사가 지난해 12월경 “제로코로나 정책에 문제가 많다”며 시진핑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성토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국장급 외교관이 시진핑의 방역정책을 성토한 일종의 ‘대역죄’다.
진짜 설화인가, 기획 도발인가
반면 싱하이밍 대사의 ‘A4 원고지’ 발언이 친강(秦剛)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의 지시를 받아 이뤄진 ‘기획 도발’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 전직 외교관은 “친강 외교부장이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의 대표주자인 만큼 싱 대사의 발언이 중국 외교부 본부의 훈령을 받아 이뤄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경우 한·중 간 경색국면은 싱하이밍 대사의 남은 임기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외교부 왕원빈(汪文斌) 대변인은 지난 6월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한국 각계 인사들과 광범위한 접촉과 교류는 그 직책 범위 안에 있다”며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 싱하이밍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인신공격성 보도를 하는 데 대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