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수장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8일 오전 미 공군기를 타고 베이징을 방문했다. 미 국무장관의 방중은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이후 5년만이다. 블링컨은 당초 지난 2월 초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상공에서 포착된 중국 정찰 풍선 논란으로 방문을 연기했다. 블링컨은 이틀간 중국에 머물면서 친강 외교부장(장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잇따라 만날 전망이다.
블링컨의 이번 방중은 미중 갈등 격화 속에 오판에 의한 무력 충돌 등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블링컨은 지난 16일 방중 의미에 대해 “치열한 경쟁이 대립이나 충돌로 비화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또한 17일 유세차 필라델피아로 이동하는 중에 ‘블링컨 장관이 이번 방중에서 미중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몇 달 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다시 만나 양국이 어떻게 서로 잘 지낼 수 있는지 이야기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18일 친강 외교부장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할 예정이다. 19일에는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중앙 외사판공실 주임)과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블링컨은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2018년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았을 때는 시 주석이 그와 만났다”고 했다.
블링컨과 중국 고위급은 이번 만남에서 미중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광범위하게 논의할 전망이다.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 간 소통 채널을 확보하고, 대만 문제 등 중국이 주장하는 ‘핵심 이익’의 마지노선을 서로 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무역 분야에서는 미국이 제기한 ‘디리스킹(중국 의존도 완화를 통한 위험 제거)’에 대해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 둔화, 소비 회복 지연, 외국인 투자 감소, 청년 실업률 상승 등에 직면해 미국과 경제 교류·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미중 정상 간 만남에 대해서도 논의될 전망이다. 시진핑은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블링컨의 방중 성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 “중국이 올해 들어 국제 무대에서 일련의 외교 성과를 거둔 덕분에 자신감이 크다”면서 블링컨을 마냥 환대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진핑과 만나 중국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외교부는 블링컨의 방중에 대해 “중국 측은 중·미 관계에 대한 입장과 우려를 천명하고 자신의 이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또한 중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블링컨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를 강조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시도하면 안 된다고 경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를 막기 위한 중국의 노력을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에 맞서 미국의 대중 억제, 대만에 대한 무기 공급 등을 강력 항의할 가능성이 높다.
블링컨은 중국으로 가는 길에 한국·일본 외교수장과 연쇄 통화하며 한미일 연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는 17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통화에서 “상호존중에 기반해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한국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한미관계, 한중·미중관계, 북한 문제 등에 관해 협의했다. 같은 날 하야시 외무상과의 통화에서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철통 같은 방위 공약을 재확인했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 발전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이슈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