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이 ‘성룡 쿵후(功夫) 컬렉션’으로 소개하는 의류 광고. 무아(無我)의 경지를 뜻하는 ‘선천일기(先天一?J)’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 리닝은 지난해 중국에서 아디다스를 제치고 의류 브랜드 매출 3위에 올랐다. /리닝

“동방의 미학이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옷.”

19일 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은 홈페이지에서 ‘성룡 쿵후(功夫) 컬렉션’으로 판매 중인 의류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 컬렉션은 중국 무술에서 영감을 얻은 ‘도복’ 스타일 옷들로, 광고 영상 제목은 주역(周易)에서 무아(無我)의 경지를 뜻하는 ‘선천일기(先天一炁)’다. 중국만이 만들 수 있는 의류 컬렉션이라는 자신감이 담겨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리닝은 지난해 스포츠 의류 브랜드 매출에서 아디다스를 누르고 3위에 올랐다. 중국 브랜드 안타스포츠도 나이키를 처음으로 꺾고 지난해 매출 1위에 올랐다. 중국의 스포츠 의류 매출 순위 톱 5 가운데 1,3,5위를 중국 브랜드가 석권했다.

중국에서 ‘궈차오(國潮)’에 불이 붙고 있다. 궈차오는 ‘국산(國産) 바람’이라는 뜻으로 중국 문화·기술 기반의 중국산 제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다. 링링허우(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층)가 주도하며 화장품·IT·의류·식음료 등 중국 소비 전반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중국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리닝이 자신의 이름으로 1989년에 내놓은 리닝이 급성장한 것도, 중국산이란 사실을 감췄던 기존 중국 브랜드들과 달리 ‘중국 리닝’을 전면에 내세워 궈차오 열풍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리닝은 2018년 중국의 오성홍기(국기)를 떠올리게 하는 홍색·금색 조합의 스포츠웨어 컬렉션을 뉴욕 패션 위크에 선보이면서 ‘애국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중국 스포츠 의류 시장에서 토종 브랜드 투톱인 리닝과 안타스포츠의 내년 점유율이 22%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아디다스의 내년 점유율은 11%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요즘 중국 청년들이 가장 많이 신는 신발로 꼽히는 ‘페이웨(飛躍)’ 운동화. /페이웨

중국 청년들이 요즘 가장 많이 신는 신발은 ‘페이웨(飛躍)’ 운동화다. 흰색 천으로 만든 실내화 같은 이 신발은 한 켤레에 2만원이 되지 않지만, 위 세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이 팔린다. 1927년 탄생한 상하이 신발 브랜드 후이리(回力)도 인기다. 베이징의 한 청년 기업인 리모(37)씨는 “중국의 진짜 부자 청년들은 후이리로 멋을 낸다”고 했다. 중국 토종 커피 브랜드 ‘루이싱’은 최근 점포 1만 곳을 돌파해 ‘스타벅스’ 매장 수를 크게 앞섰다고 홍보하고 있다. 중국인의 입맛에 맞춰 아메리카노에 포도, 수박, 딸기 맛 등을 섞은 메뉴를 선보였는데 중국식 커피의 기준을 세웠다는 평을 듣는다.

화장품 브랜드 완메이르지(完美日記), 화시쯔(花西子)도 대표적인 궈차오 브랜드다. 완메이르지의 12색 아이섀도 팔레트는 약 2만원으로,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의 6색 아이섀도 팔레트(약 3만원)보다 저렴하다. 완메이르지와 화시쯔는 6년 전만 해도 중국 색조 화장품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이 1%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15%로 뛰어올랐다. 치약도 중국에서는 인삼과 약초 성분을 내세운 윈난 바이야오그룹 치약이 프록터앤드갬블(P&G)보다 많이 팔린다.

궈차오 브랜드는 애국 열풍이 불 때마다 약진했다. 예컨대, 2021년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서방 기업이 중국 위구르족의 강제 노동 논란이 불거진 신장 지역 면화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자, 중국 소비자들이 리닝과 안타 등 국산 스포츠 브랜드로 대거 돌아섰다. 외국 기업들이 중국을 코너로 몰아넣는다며 분노한 것이다. 최근 미·중 갈등에 따른 애국주의 확산은 궈차오 브랜드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코로나 방역 해제 이후 중국의 더딘 경제 회복에 고전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궈차오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이중 타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의 상하이지사 파트너인 제임스 양은 WSJ에 “외국 브랜드가 중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브랜드들이 중국의 소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이제는 중국 브랜드가 자국 쇼핑 시장에서 세를 급속히 불렸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궈차오가 애국주의에만 기댄 현상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중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 1만달러를 돌파하면서 새로운 소비를 추구하는 중국 젊은 소비층이 등장한 것도 궈차오의 주요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소비에서 실용과 개성을 추구하는데, 1990년대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또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고, 신규 브랜드의 진입이 쉬운 중국의 온라인 판매 환경 등도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글로벌 브랜드는 중국 소비자들을 위한 맞춤형 제품과 마케팅 전략을 내놓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디다스는 ‘CHINA’가 프린트된 의류를, 나이키는 십이지 동물이 그려진 스니커즈를 출시했다. 미국 명품 브랜드 ‘코치’는 중국에서 국민 사탕으로 불리는 ‘큰 흰토끼(다바이투)’ 로고를 담은 의류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