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자국민을 귀국시키기 위해 괴롭히고 협박을 했다는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중국 출신 주용(오른쪽)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AP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해외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본국으로 강제 압송하는 이른바 ‘여우사냥(獵狐·례후)’에 대해 미국 법원에서 첫 유죄판결이 나왔다. 미 브루클린 연방지법 배심원단은 20일(현지 시각) 전직 뉴욕경찰(NYPD) 출신 사립탐정 마이클 맥마흔(55)과 중국 국적 미 영주권자인 주융(66), 정충잉(27)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다. 이에 따라 맥마흔은 최대 20년, 주융과 정충잉은 각각 최대 25년과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미 법무부는 밝혔다.

중국 정부의 공작 요원인 주융과 정충잉은 각각 건설 현장 노동자와 버블티 가게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맥마흔과 함께 팀을 이뤘다. 이들은 중국 공안 당국의 지휘를 받으며 뉴저지에 거주하는 전직 중국 관료이자 반체제 인사인 쉬진과 그 가족을 타깃으로 삼아 강제 압송 공작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당국이 반체제 인사를 잡아넣기 위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도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중국은 2015년 인터폴을 통해 쉬진과 그의 아내를 부패 혐의로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당시 관영 매체인 차이나데일리는 “인터폴이 중국의 부패 범죄자 100명을 체포하기 위한 국제 수사망을 가동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세 사람은 역할을 분담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쉬진 가족을 감시·협박·회유했다. 쉬진 부부 및 딸에 대한 각종 신상 정보를 불법으로 빼내 중국 공안 당국에 전달했다. 주변 인물들의 거주지를 감시하면서 중국 공안 당국에 정황을 보고했다. 쉬진의 뉴저지주 집 앞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10년만 투옥되면 아내와 아이는 무사할 것’이라는 협박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쉬진의 주변을 샅샅이 감시하기 위해 중국 당국은 야간투시경 같은 첨단 장비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 등을 바탕으로 중국 공안 당국은 일종의 ‘인질극’도 벌였다. 2017년 4월 당시 82세 고령이었던 쉬진의 부친을 중국에서 뉴저지로 데려와 쉬진에게 귀국을 종용했다. 쉬진의 딸에게는 (말을 듣지 않으면) 중국에서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중국은 ‘여우사냥’을 부정부패 척결 활동의 일환으로 주장해왔지만, 미국은 자국 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겨냥한 중국 공안 당국의 불법 공작으로 규정하고 적극적 수사해왔다. 이번 사건은 이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뒤 법원에서 유죄판결까지 나온 첫 사례다. 브레온 피스 뉴욕 동부연방지검장은 평결 후 성명에서 “우리는 국경을 넘어 초국가적 탄압 계획을 저지르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폭로하고 약화시키는 데 확고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번 평결을 두고 “미국이 범죄와 싸우려는 노력을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주한 부패 범죄자들을 잡아들인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여우사냥’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각국에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밀 경찰서’가 작전 거점이라는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에선 지난해 연말 송파구 중식당 ‘동방명주’가 중국 비밀 경찰서로 지목돼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