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 고위급이 최근 한국에서 발견된 대만발(發) ‘수상한 소포’는 중국에서 최초 발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2일 대만 중스신원왕(中時新聞網)에 따르면 정원찬(鄭文燦) 대만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격)은 이날 오전 대만 형사국(刑事局)이 한국의 소포 사건 관련해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하고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정 부원장은 “대만 형사국의 초동 조사 결과 해당 소포는 중국 선전에서 ‘경유 우편[화전우·貨轉郵]’ 서비스를 통해 대만에 보내졌고, (대만 교통부 산하 우체국인) 대만우정(中華郵政)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발송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추적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사건의 실체를 명확하게 파헤치고, (국제 우편 발송 등에서) 어떠한 부분의 검사를 강화해야 하는 지 살펴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사건은 고도의 경각심을 갖고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주한 대만대표부도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의 소포는 중국에서 최초 발송되어 대만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조사 결과와 관련 자료를 즉각 한국 경찰과 유관 기관에 공유했고, 현재 대만과 한국의 관련 부처는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공조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의 소포들은 대만우정의 화전우 서비스를 이용해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화전우는 타국의 화물을 대만을 경유해 제3국으로 보내는 서비스다. 해외에서 해운으로 대만에 들여온 소포나 우편을 대만에 반입하지 않고, X선 검사 등을 거친 후 곧장 제3국 목적지로 보내는 방식이다. 이 서비스의 주 고객은 중국 본토의 쇼핑몰 등 해외 배송 업무가 잦은 업체들이다. 중국에서 직접 항공편으로 소포 등을 배송하면 대기 시간만 최소 이틀이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일 울산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에 기체 독극물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배달됐다. 21일에는 서울의 명동 중앙우체국에서 유해 물질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발견돼 건물 내 1700여 명이 한꺼번에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대만 등에서 배송된 의심스러운 소포에 대한 112 신고는 22일 오후 5시까지 사흘간 1647건이 접수됐다. 다만 소포에서 아직 독극물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는 않아 무작위 테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경찰은 노란색이나 검은색 우편 봉투에 ‘CHUNGHWA POST(중화우정)’, 발신지로 ‘PO Box 100561-003777, Taipei Taiwan(대만 타이베이)’ 등이 적힌 소포를 발견하면 열어보지 말고 즉시 112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대만·홍콩 매체들은 이번 사건이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브러싱 스캠은 온라인 쇼핑몰이 무작위로 소포를 발송한 다음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 처리해 판매 실적과 평점을 조작하는 수법이다. 판매량이 많고 평점이 높을 수록 소비자들이 신뢰한다는 점을 악용한 사기다. 앞서 2020년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중국 쑤저우에서 발송한 정체불명의 소포가 다수 발견돼 혼란이 벌어졌다. 소포 포장지에 적힌 품목명은 장난감 등이었지만 내용물은 작물 씨앗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도 중국발 ‘생화학 테러’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미국 농무부는 조사 결과 브러싱 스캠 외 다른 행위로 볼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