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秦剛)의 면직으로 외교부장(장관)에 다시 오른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6일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외교부장 ‘컴백’ 후 첫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같은 날 중국 소셜미디어와 검색 사이트에서는 친강과 관련해 ‘매국[叛國]’ ‘간첩’ ‘불륜녀’ 등이 추천 검색어로 올라왔다. 고위급 실각 시 인터넷상 민감 정보를 검열·차단하는 관행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 외교라인의 투톱이었던 왕이·친강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갈렸다.
26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는 이날 튀르키예 앙카라에 도착해 하칸 피단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최근 재집권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접견했다. 왕이와 만난 에르도안은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왕이는 이에 대해 “중국은 튀르키예와 서로의 핵심 이익 문제를 챙겨주고, 정치적 신뢰를 수호하고 심화해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게 되길 원한다”고 했다.
시진핑 체제에서 10년간 외교부장을 맡았던 왕이는 작년 말 친강에게 자리를 물려준 이후 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으로 당 차원의 외교 정책을 지휘해왔다. 그러나 25일 친강이 외교부장에서 면직되면서 앞으로 한동안 외교부장과 외사판공실 주임을 겸임하게 됐다. 당(외사판공실 주임)이 지침을 내려주고 정부(장관)가 필드를 뛰는 중국 정치 체제를 감안하면 갑자기 ‘플레잉 코치(선수 겸 감독)’가 된 셈이다.
중국 정부가 친강 실각에 대한 해명 없이 ‘왕이 단독 체제’로 급전환한 가운데, ‘친강 지우기’도 본격화됐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부장 소개 페이지는 “정보 업데이트 중”이란 안내문이 표시되고 있고, 역대 외교부장을 소개한 페이지에서는 친강의 이름이 빠졌다. 친강의 외교 활동 정보들도 일괄 삭제됐다. 지난달 친강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의 회담 소식조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없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는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 표명에 대해 “로봇 같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 26일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는 친강에 관한 질문이 21건이나 나왔지만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차웨(査閱, 찾아서 읽어보라)’란 단어를 반복했다. “신화통신이 배포한 소식을 찾아 읽으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결정을 찾아 읽으라”고 하는가 하면, 친강이 부장에서 해임됐는데도 국무위원(부총리급)직을 유지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고 했다. 지금껏 중국 당국이 친강의 공개 활동 중단과 관련해 구체적 이유를 밝힌 적은 지난 11일 중국 외교부가 ‘건강상의 문제’라고 한 것이 유일하다.
한 웨이보 계정은 “(중국 정부는) 추가 정보를 줄 생각 없이 친강에 대한 호기심이 식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중국은 신비한 대국”이라고 했다.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단톡방에서는 ‘Q강’ ‘qg’ 등 친강을 가리키는 은어를 사용하며 친강 실각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30대 베이징 시민은 “과거에도 고위직이 ‘증발’한 적은 있었지만, 미디어 노출이 잦은 외교부장이 사라진 것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충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친강에 관한 온라인 검열을 느슨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도록 방치하며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바이두(중국판 네이버) 검색창에서는 한때 친강의 연관 검색어로 ‘친강 간첩’이 등장했다. 웨이보에는 친강의 연관 검색어로 ‘친강 샤오산(불륜녀)’, ‘친강 매국’ 등이 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친강 관련 글을 검열하는 작업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해임과 왕이의 외교부장 복귀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웨이보에서는 친강의 불륜 상대라는 소문이 퍼진 아나운서의 친강 인터뷰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2021년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장가오리 전 부총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을 때는 관련 글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과 대조적이다.
친강의 국무위원(정부의 지도부)직과 당 중앙위원직도 향후 박탈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규정에 따라 국무위원 직무는 내년 3월 전인대 본회의에서 박탈될 것으로 보인다. 왕이는 사태 수습을 위한 ‘징검다리 외교부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를 이을 차기 외교부장에는 류젠차오 중앙 대외연락부장, 마자오쉬 상무부부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